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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Oct 13. 2021

캔디 캔디

사탕 하나에도 존재하는 아들의 세계


사탕 그리고 

아들의 세계


4년 전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뒷좌석에 앉은 아들들이 피곤한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가방을 뒤적이니 출발 전 급히 챙겨 넣은 사탕 봉지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사탕과 캐러멜을 하나씩 건네자 징징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바뀐다. "너 뭐 먼저 먹을 거야?" "형은? 우리 캐러멜 먼저 먹을까?" "아니, 사탕 먼저 먹자." "그래!"


아들들의 세계는 이렇다. A와 B가 간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캐러멜 먼저 먹자" 성격 급한 A가 먼저 제안한다.  A의 말 "그래!"라 바로 응하는 것은 곧 B의 패배를 의미한다. "아니, 사탕 먼저 먹자."라는 말로 B는 A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혹 A와 B 모두 캐러멜을 먼저 먹고 싶을 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먼저 "캐러멜을 먹자" 말을 꺼내는 순간, 캐러멜이 먹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반드시 사탕을 먼저 먹어야"하는 의지가 불타오른다.) 먼저 의견을 낸 A는 반기를 든 B에게 "알겠어, 사탕 먼저 먹자."라 답한다. 이는 "좋아, 내가 한 발 양보하지!"를 의미한다. A와 B의 싸움은 평화롭게 끝났으며 그들은 달콤한 사탕을 입에 물고 흡족해한다.


문제는 이렇게 사이좋게 끝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는 경우 맛도 못 본 사탕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설탕 때문에 후추 때문에 전쟁이 나고 지도 모양이 바뀌, 아들 둘 싸움이 엄마아빠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형제는 그렇게 매일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인다.




더없이 달콤한

아들들의 사탕 엄마


사탕과 캐러멜 덕에 차 안은 이내 조용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좋은 거라고, 그렇게 싸들고 다니며 입에 물렸나 싶지만. 그 시절 사탕은 떼쓰고 징징거리는 아이를  착한? 아이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가루 같은 존재였다.


"엄마! 엄마 만들었어요." 

캐러멜을 먹던 첫째가 나를 불렀다.


"나를?"

클레이도 색연필도 없는 차 안에서? 지금?

무슨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구불구불 연갈색 웨이브 단발머리를  소녀가 터질 것처럼 빨개진 얼굴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엄마 머리랑 똑같죠." 어금니 자국이 선명한 캐러멜을 얹은 막대사탕을 든 첫째가 헤벌죽 웃으며 말했다. 옴마야, 세상에! 만화 여주인공이 따로 없네.



"잠깐만, 잠깐만! 먹으면 안 돼!

 사진 하나만 찍고 금방 줄게."


아이 입에 쏙 들어가 우적우적 씹혀 사라질라 황급히 소리쳤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그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한 나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이벤트였다. 아이들 손에서는 연일 멋진 작품이 탄생했고, 그들의 그림을 걸어둔 거실 벽은 갤러리였다. 바지 위에 팬티를 걸치기만 해도 아이들은 슈퍼맨이 되었고, 멋들어지게 폼 잡고 걷는 거실은 런웨이 현장이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휴대폰 카메라를 켜던 나는 사진 기자였고, 아이들 모습에 배꼽 잡고 웃던 나와 남편은 개그콘서트 관객이었다.




캔디 캔디


요즘 도서관에서 만화책 <캔디 캔디>를 빌려다 보고 있다. 이게 왜 이리 재밌었을까 싶으면서도 향수에 젖어 후루룩 읽게 된다. 최근 본방 사수하는 SBS 드라마 <홍천기>도 조선판 캔디 이야기다. 홍천기는 신령한 힘을 가진 여화공이다. 아버지 역시 신령한 화공이었으나 어용을 그린 후 광증에 걸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모작공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홍천기는 왕자님, 진짜 조선시대 왕자님(양명대군)을 만나게 된다. 왕자님과 남자 주인공 모두 예쁘고(!!!!) 씩씩한 홍천기를 연모해 물심양면 도와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하늘,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를 웃게 하는

아들의 세계


아이들이 없었다면 내 삶은 얼마나 메말랐을까.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참고 참고 또 참는 <캔디 캔디>였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참고 또 참지 않는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려 노력한다. 참고 또 참고 웃으면서 달리다 왕자님을 만나 팔자 펴는 건 드라마에나 있는 이야기다. 실상은 속이 문드러져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플 확률이 훨씬 높다. 내 비록 왕자님은 못 만났지만 왕왕 잘하는 남편이 있다. 우리의 아이들은 사탕으로, 편지로, 때론 투정으로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다. 그들은 과거 내게 결핍되었던 사랑과 에너지를 차곡차곡 채워준다.


반면 형제 간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다.

함께 먹는 반찬에 고춧가루를 묻혀서.

현관에 누워있는 자기 신발을 밟고 지나가서.

내가 고르려던 아이스크림을 먼저 집어서.

(똑같은 비얀코가 마트 냉동고에 20개 가량 누워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싸우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채워졌던 에너지 다시 쭉쭉 빠지느낌이다. 돌아보그렇게 열심히 쟁여놓았, 몸에 좋지도 않은 달콤한 간식거리들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내 고갈된 에너지 보충을 위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사탕이나 맛난 음료가 가져다주는 평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들은 사탕으로 캔디 엄마를 만들어 주었다. 놓치지 않고 찍어놓은 그 사진 덕에 그 순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행복하다. 아이들이 만든 캔디 엄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나를 웃게 해 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나는 행복하다. 그걸로 만족한다.


그거 알아요, 엄마?
MOM(엄마)라는 단어를 뒤집으면 WOW(멋지다~)가 된다는 걸요.
더 이상 조지는 내가 항상 'WOW'(멋지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지의 카드는 한때 조지가 나를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말해줍니다. 나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맨 처음 그 카드를 봤을 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 카드는 나를 웃게 해 주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외에도 나는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카드들을 초록색 가방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많이 넣어놓았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고, 아이들은 나를 사랑합니다. p 47

- 니나 샹코비치 <혼자 편지 쓰는 시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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