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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Oct 07. 2021

아들들의 '발' 역사

내 귀요미들 돌려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첫째가 뱃속에 있을 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는 동화책을 선물 받았다. 그림이 투박해 아기자기 예쁜 그림을 좋아하던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동화책 중 가장 활용을 잘 한 책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읽어주기 시작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먹히는 우리 집 롱런 동화책이다.

사랑해, 사랑해. 우리 아가를 사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를 사랑해.

마음 깊은 곳부터 온몸 구석구석까지 너를 사랑해.

(중략)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중


내 키만큼 훌쩍 큰 아이들이 잠들락 말락 할 때 종종 이 동화를 들려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를 사랑해'다. '머리끝부터'라는 구절에서는 아이들 머리칼을 살살 헝크려트린다. '발끝까지'라는 구절에서는 아이들 발등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쉬운 내용이기도 하고, 워낙 많이 읽다 보니 우리 집만의 버전으로 만들어 들려주기도 한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OO이를 사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OO이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OO이를 사랑해
엄마 미워! 버럭버럭 소리 지를 때에도 OO이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OO이를 사랑해
뿡뿡 지독한 방귀를 뀌어도  OO이를 사랑해

- 우리 집 버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출처: 알라딘


"언제 이렇게 컸어?" 간만에 보는 이들은 훌쩍 큰 아이들을 보며 놀라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매일 보는 엄마에게는 사실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아이들이 컸다는 것을 실감할 때는 입던 옷이 작아졌을 때 또는 신던 신발이 작아졌을 때다. "발이 이렇게 컸어? 신발 사러 가야겠네."라며 말이다.

밀가루 놀이하던 사진을 가만히 보다가 아이들 '발과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를 연결해 2013년 폴더를 클릭했다. 아들들이 가장 귀여우면서도 엉뚱했던 시기다. 아이들만큼이나 재치있고 재밌는 '발' 사진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아들들의 '' 역사


밀가루 먹지 마세요, 맨발에 양보하세요. :)

엄마표 놀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첫째가 만든 세상 하나뿐인 DIY 밀가루 신발.

단점이라면 한 번 벗으면 다시는 못 신는다는 것?



이 문제냐, 양말이 문제냐

형아 유치원 실내화를 빨아놓았는데,

둘째가 자기도 신어보겠다고 낑낑대고 있었다.

왼쪽 양말은 어찌어찌 신었는데 맘처럼 안 되나 보다.

결국 신발은 신어보지도 못하고 양말을 패대기치더니 울음보가 터졌다.



가락으로 그림 그리는 남자

이 도구 저 도구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

크레파스를 이용한 새로운 놀이를 발견했다.

발가락 사이사이 알록달록 크레파스를 껴넣었으나

힘이 약해서인지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았다.



하나만 신으면 멋이 없지.

레이어드를 해줘야 패션의 완성!

욕실화를 세 개나 놓았던 시절이 있었구나.

뭘 해도 귀여웠던 둘째.



짝짝이 신

하루 종일 저러고 다녔나?설마...

하루종일 저러고 다니진 않았을 텐데. 갈아 신겼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언제였더라. 컴퓨터 본체 수리할 일 있어

근처 상가에 낑낑대며 들고 가는데

뭔가 이상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들들의 그 엄마였다는! :-p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희를 사랑해


아이들은 이제 나보다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는다. 길이도 길이지만 두 아들 모두 발등이 높고 발볼이 넓은 편이다 보니 컨버스화는 꿈도 못 꾼다. 크록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던가. 투박한 운동화와 크록스로 아이들은 일 년을 난다.


귀엽고 깜찍했던 아이들의 발만큼 오물조물 귀여웠던 앵두 같은 입술. 그 입에서 이제 "A, C", "미르스틴" 이런 단어가 심심찮게 들린다. 신발을 신으며 "이런 신발!"이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엄마가 어떻게 나오나' 슬슬 간 보는 걸 보니 내 머리 위에서 놀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엉뚱하고 재밌는 신발을 만들어 신던 귀요미가 입으로 '신발'을 내뱉다니! 엄마 미소를 짓게 하던 귀요미들아, 어디로 갔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너희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입으로 신발을 뱉어도 너희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거뭇거뭇 수염 난 너희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희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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