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집 근처 문화센터 홍보물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선현우의 엄마표 영어> 입트영 선현우 쌤? 대박! 당장 예약하고 날짜에 맞춰 강의를 들으러 갔다. 사실 강의는 별다를 게 없었다. 한창 '엄마표'에 관한 관심과 정보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강의시간이 너무 짧다 보니 깊이 있는 내용이나 질문이 오고 가지는 못 해 아쉬웠다.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문화센터 직원이 묻는다.
"강의 어떠셨어요?"
"네, 좋았어요."
"문화센터에서 엄청 신경 써서 준비한 강좌거든요."
뒤를 도는데 TV에서 보던, 조금 전 칠판 앞에 서 계시던 그분이 강의실에서 나오고 계셨다. 무슨 용기였을까. "저.. 같이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내가 묻고 있었다. 쌤은 흔쾌히 촬영에 응해 주셨다. 너무 부끄럽고 떨려서 심장 튀어나올 뻔. 다소곳하게 모은 두 손 좀 보게나. 얼굴 흐리게 가려서 망정이지, 두 뺨은 붉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때 그 사진을 본 둘째가 내게 이 사람 누구냐고 물었다. 장난기 발동한 나는 "엄마 남자 친구야."라 답했다. 옆의 엄마 한 번, 사진 속의 엄마 한 번, 번갈아 보며 계속되는 둘째의 질문공세. 더 이상 지어낼 말이 없어 이실직고했다. TV에서 영어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강의 들으러 갔다가 엄마가 부탁해서 함께 사진 찍은 거라고. 인터넷 검색해서 선현우 쌤 다른 사진들 보여주니 다시 한번 질문 폭탄이 쏟아진다.
"사진 찍고 둘이 뭐 했어요?" (뭐 하긴 뭘 해 ㅋ)
"TV 어디에 나와요?" (요즘은 다른 일 하시는 듯)
"결혼했어요?" (애들이 영어 엄청 잘한다더라, 이눔아)
5년 전 사진을 꺼내보고 있자니 마흔, 참 예뻤던 때구나 싶다.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 하던데. 진짜 옛 남친의 사진을 남겨두었을 리는 만무하고, 나름 최근 '두 뺨 빨갛게 가슴 콩콩했던' 때를 돌아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마흔 중반의 나는 여전히 종종 설렘을 느끼며 산다. 나의 동거인, 남의 편, 남편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녔다. 누군가 내게 '잘생긴 얼굴', 또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남자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이제 고민 없이 '멋진 목소리'를 택할 것이다. 날 선 나를 다독이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진중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 그런 남편과 통화할 때 혹은 그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나는 종종 설렌다. 문제는 그 남편과 평생 통화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이랄까?
브런치 발행 버튼을 누를 때 역시 매우 설레는 순간이다. 내 서랍 속 낙서하듯 적은 글들이 다듬어져 세상 밖으로 나오는 시간. 늘 긴장되면서 설레곤 한다. 젊은 날의 나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완벽주의 성향이었던 나는 발행 버튼을 누르고도 한참을몹시도괴로워했을 것이다. 부족한 나를 탓하고 자책하며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몸소 배우고 있다.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미안하다 사과할 줄 아는 용기도 배워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종종 설레는 인생을 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