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일기장도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게 싫었는데, 내가 즐겨 듣는 음악도 남한테 ‘좋아요’ 받아야 해? 그게 ‘참 잘했어요’랑 뭐가 다른데?
- 그러네.
- 나를 속이면 안 되는 거잖아. 일기는. 근데 난 속였다고. 착한 어린이니 뭐니 해서. 거의 금칠을 했다고. 그걸 어른이 돼서, 남 앞에서 그래야 하는 거야?
- 뭐 잘못한 거 있어?
-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지금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잘난 인간이 아니라고.
- 오케이, 오늘 계산은 니가 해라.
- 넌 왜 또 쓸데없이 그런 얘기야! 커피 값을 내가 왜 내.
- 아이고 잘났네, 잘났어. 나 더 안 속아. 어디서 내빼려고. 쯧
- 쯥. 알았어. 앱으로 잔고 좀 보고.
- 카페는 들어가 봤어? e알림이는?
- 있어봐.
Memo 2.
학생 1 : 내가 저번에 엄마 몰래 피자 시켜 먹었잖아.
학생 2 : (핸드폰을 보며) 근데?
학생 1 : 늦게 온다던 엄마가 일찍 들어온 거야.
학생 2 : (핸드폰을 놓으며) 그래서?
학생 3 : (계산대에서 자일리톨 껌을 집으며) 야, 이거 다른 거 먼저 사?
학생 2 : (보지도 않은 채 손짓하며) 알아서 니가 사. 오긴 왔어?
학생 1 : 벨 누르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했지. 내가 나갔어. 신발도 안 신고.
학생 2 : 오올~
학생 1 : 근데 피자만 놓고 갔더라고. 배달부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학생 2 : 받긴 받았네?
학생 3 : (계산 치른 껌을 들고 자리로 돌아오며) 맛있겠다~
학생 1 : 당연하지. 근데 내가 핸드폰에 대고 약하게 말한 거 같아. 배달부가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내 목소리 보고 웬 할머니가 전화한 것 같다고...
학생 2,3 : (손뼉 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이 두 개의 대화가 왜 내 메모장에 들어있을까. 왜 적었는지 모르겠고, 어디서 적었는지 언제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둘 다 평소의 내가 쓰지 않을 법한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복구하는 와중에 들판에 버려진 돌을 생각했다. 석굴암을 복원하는 과정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돌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도 생각했다. 틀이 없는 상태로 퍼즐 맞추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첫 번째 조각은 내 경험에 접속하여 일기에 대한 에세이로 탈바꿈했다. 나머지 조각도 언젠가 쓸 일이 있을까. 아니, 첫 번째 조각이 고스란히 들어갈 작품을 나는 쓸 수 있을까. 저걸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이 메모를 가져갈 글은 무엇이 될까.
예금주가 없는 예금 통장의 적금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나는 얼른 저장 버튼을 누른다. 다른 글을 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