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맨손으로 설거지한다. 밥그릇에 붙은 밥풀은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직접 그릇을 만져야만 닦이지 않은 전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습진이 걸려도 어쩔 수 없다. 겨울에 찬물에 손을 넣는 일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늘 물로 한 번 헹군 다음에 세제 거품을 묻혀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는다. 중성 세제는 적은 양으로도 잘 닦이지만, 때로는 내 게으름 탓에 음식물 찌꺼기가 눌어붙을 때가 많다. 초파리가 나오지 않으려면 얼른 해야 하지만, 늘 다짐만 냅다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차용증을 시간에게 받았을까.
카레가 묻은 설거지를 할 때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식기나 요리 도구들이 강황 빛으로 물드니까. 물이 빠지면 시간이 걸릴 테고, 나는 새하얀 식기에 물든 노란색을 볼 때마다 카레를 떠올리겠지. 한두 번 먹어야 맛있는 카레를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은 나는 얼른 손으로 카레 묻은 자국을 닦는다.
튀김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찬 물로 설거지했다간 그릇과 냄비가 기름 바른 장어처럼 손에서 빠져나간다. 깨질 그릇 생각이 번뜩 들어서 얼른 더운물을 틀었다. 찌든 기름은 여러 번 닦아야 겨우 반반해진다. 맨손으로 미끈거리는 게 만져지지 않을 때서야 설거지는 끝난다.
어쩌다 프라이팬에 탄 게 눌어붙거나, 설거지 또한 각오를 해야 한다. 탄 음식이 눌어붙은 프라이팬에 물을 넣고 다시 데우는 동안에도 제발 코팅이 벗겨지지 말라고 기원했던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냄비 손잡이에 페인트 타는 냄새는 참을 수 있어도, 코팅이 다 벗겨져서 계란 프라이 눌어붙는 프라이팬은 못 참았으니까. 그때마다 내 맨 손은 다 닦은 프라이팬의 표면을 확인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라는 말에 공감한다. 모든 도구가 제자리로 돌아온 부엌을 볼 때마다 내가 이 소우주를 유지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채워질 때도 있었으니까. 딱 내가 요리하느라 일을 벌인 만큼 설거지가 주어진다는 사실이 때로는 지나치게 버겁다. 그러나 삶은 결국 글을 이긴다. 글이 늘 뒤란에서 생각에 잠기는 동안, 삶은 바로 지금 내 앞에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설거지에 대한 경험을 글로 번역하면서, 나는 버틴다는 일의 숭고함과 생활의 위대함을 새삼스레 매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