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던 국을 끓이긴 해야 하는데 귀찮다. 국이 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끓여줘야 하는 데도 불을 켤 수가 없다. 불을 켜면 냄새가 날 것이고 냄새를 빼자면 지금 저 문을 열어야 한다.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를 매일 쓰는 게 아닌 이상 이런 고민에 자주 빠진다. 먹기 위해 열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찬밥에 물 말아먹고 땡 할까.
불 쓰지 않는 메뉴를 고민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종류별로 구매해서 먹은 나머지 후기의 별점도 작성할 수 있는 지금의 나는 전자레인지가 그나마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어야지. 반찬보다 많은 밥을 사기 위해 굳이 편의점을 들락날락할 필요가 있나.
동네에 변변한 반찬가게도 없는 우리 집은 매번 가장 가까운 반찬가게를 가도 그늘이 하나도 없는 거리를 걸어야 한다. 선크림을 발라가며 갔다 오자니, 기껏 목욕한 몸을 다시 목욕해야 한다. 일 때문에 나갔다 오는 것도 또 하나의 일인데, 거기에 일을 더하다니.
야채는 정말 어쩔 수 없이 택배로 시킨다. 가격도 이쪽이 더 싸서 그렇게 한다. 오이는 늘 내가 없는 곳에서 잘 시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다.
겨울엔 즉석 국을 몇 봉지 쟁여놓는다면, 여름엔 냉면 육수를 몇 개 쟁여놓는다. 때론 그거에 밥 말아서 먹기도 하고, 야채를 넣어서 물회를 만들기도 한다. 주말만 되면 고기를 구워 먹거나 볶음을 먹는 습관을 줄이고, 데우기만 하면 되는 생선살과 묵사발을 만들어 먹는다.
물론 너무 집 안에서만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가끔은 땀도 흘려주고 운동도 해야 건강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공기조차 더워서 마실 수 없는 햇살 속에 들어서면 나는 행군하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어느 더운 여름날, 행군을 하던 후임 한 명이 기절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눈자위가 완전히 돌아가며 기절한 그를 잊지 못한다. 엔간한 일에 눈썹 까딱도 안 하는 중대장이 마치 쓰러진 주인 주위를 서성대는 충견처럼 어영부영하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회상의 길이도, 생각의 길이도, 불에 달군 쇠젓가락처럼 제멋대로 휘어지고 늘어진다. 머리를 좀 식히려고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 찬물을 튼다. 등목을 하는 내내, 지금 뭘 먹을지 고민한다. 그냥 과자 하나 먹고 말까. 아침부터 과자를 입에 대는 일을 금기시하는 내게 이 행동은 하나의 작은 일탈이지만 시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도리질 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땀을 흘리며, 열사병의 위험 속에서도 자신을 위해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은 나란 생각이 열처럼 치솟는 것이다. 그만 좀 이기적이어도 될 텐데 왜 거기서 더 나갈까. 부끄러움이 마음의 열로 승화한다. 몸의 더위와 마음의 열이 만나 환장할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돌고 돌아 처음 생각으로 돌아온다. 찬물에 밥을 말아서 먹어야 할까. 먹다 남은 오이소박이는 괜찮을까. 식탁 위에 좀 뒀다가 냉장고에 넣은 두부조림은 괜찮을까.
식중독과 식욕저하의 불안 속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주화입마의 위험도 경계하는 나와 강력한 불이 벌이는 '여름 전쟁'도 다시 시작이다.(2024.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