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넣을까. 맛소금은 안 될까. 차라리 간장을 넣을까. 오늘은 무도 좀 쓴데, 소금을 더 넣어도 되지 않나. 이마저도 안 되면 조미료를 넣을까. 어차피 계란 넣으면 싱거워지는 데 좀 짜도 되지 않을까. 김가루가 들어가면 더 나아질까. 파 넣으면 좀 나아지려나. 아무개는 짠맛을 좋아하는데, 다른 아무개는 염분 줄이고 싶다고 싱겁게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싱겁게 먹는다고 말하지만, 너무 싱거우면 소금 통을 찾을 테지. 이번에도 실패하면 염도계를 사야 하나.
국 하나를 끓이는 와중에도 생각이 오간다. 재료 넣는 순서야 잘 안 익는 재료부터 먼저 넣는 게 상식이다. 간을 맞추는 일은 정말 최종 과정이다. 맛있는 요리는 이 대목에서 80%가 결정 난다. 여태까지 해온 재료 손질의 고생은 전부 뒤로 한 채, 간이 모든 음식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속상하다. 그러나 작든 크든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큰 솥에다 간을 잡는 일은 집에서 먹는 요리에 간을 잡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다. 소금을 엄청 넣었는 데도 안 잡힌 간이 설탕 조금 넣었다고 순식간에 짜졌다. 계란 넣는 요리였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잔반이 많이 남을 뻔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고구마 맛탕에 물엿을 아무리 들여도 단맛이 안 났는데, 굵은소금 약간 쳤다고 짠맛과 더불어 물엿의 단맛과 고구마의 단맛이 입 안에 과즙 터지듯 터졌다.
‘많이 겪어보라’고 격려를 하며 어깨를 토닥이는 손을 ‘한 번 잘못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며 목에 긋는 시늉을 하는 손으로 바꾼 사람을 많이 봤다. 간 잡는 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잘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패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돼서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우리네 현실이다. 내가 당장 먹지 않으면 안 될 끼니를 간 잡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버릴 수 있을까. 나 또한 그런 이유로 실패한 내 요리를 혼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
복기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각박한 사회에서 요리는 그나마 실패의 기회를 주는, 그리고 실패의 기회에서 복기의 기회를 주는 유일한 생존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간장을 뿌리면 간이 나아질지언정, 재료에 있는 수분이 빠지거나, 색이 탁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도, 소금을 넣어야 하는 타이밍을 국이나 재료, 반찬의 상태로 알아채는 일도 전부 요리의 '감당할 수 있는 실패'를 겪고 나서 터득한 감각이었다. 물론 모든 체험이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지식은 체험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진의에 닿는다.
남에게 줄 요리를 만들 때만 간을 잘 잡자는 게 지금 내 모토다. 남에게 간을 보게 하든, 내가 간을 보든, 내가 만든 요리를 남이 먹을 때, 먹는 사람이 소금이나, 후추를 찾지 않는다면 내가 잡은 간은 성공한 간이 아닐까. (물론 내 기준을 남이 해준 요리에 곧이곧대로 적용해서도 안 되겠지만.)
요리를 직접 한다고 해서, 내 삶이 180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30도나 45도 정도는 달라졌지만.) 식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젠 이 값 주곤 도저히 못 사 먹겠네”)을 깨달으며, 의도치 않은 까다로움(“너무 먹었더니 이젠 뭔 맛인지도 잘 모르겠네”)도 생겼다. 그러나 간을 직접 잡으면서 나는 나와 타자의 관계를 터득했다. 늘 좋은 재료로 요리할 수 없다. 늘 좋은 사람과 지내며 살 수 없다. 간 잡는 일은 재료와 나의 관계를, 타인과 나의 관계를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이나 진배없다. 그 표현을 익히면서 나는 내 삶의 줏대와 타인의 사정 사이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었다. 사람이 누구나 유리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간 잡는 일을 통해 배웠다. 재료에 따라 사정에 따라 요리 과정에 따라 요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나는 간 잡는 일로 배웠다. 요리를 하면서, 직접 간을 잡으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벗어나, 타자(他者)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일이 보였다. 우리는 무심결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배려를 뭉텅 받으며 산다. 또한 우리는 무심결에 다른 사람에게 뭉텅 배려를 넘겨주며 산다. 인지하지 못하는 이런 선순환이 우리의 삶을 끝내 지탱한다는 사실을 나는 자주 잊고 살았다. 간을 맞추면서 상대방의 취향이나 심정을 헤아리는 일을 게을리했다면 이 아름다운 선순환이 시시각각 우리 곁을 지나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리라. 모르고 살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너무 많이 국물을 먹었더니 입안 가득 짠맛이 많이 돈다. 물 한 잔 마시고 잠시 있다가, 다시 국물을 한 숟가락 뜬다. 약간 싱겁지만 소금이나 간장을 더 넣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불을 끄고 대파를 넣은 다음 뚜껑을 덮는다. 이만하면 맛있게 먹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