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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Sep 07. 2024

산허리에 붙은 불편

9월 7일

  산 근처에 살면 산 많이 오르겠다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날파리 트랩’을 검색 창에 매번 썼다가 지우는 나는 이제 귀찮아서 그려려니 한다. 대꾸하기엔 너무 더운 날씨니까.


  일 때문에 밤중에 스탠드를 켜고 작업할 때가 많다. 어디서 왔는지 날파리 한 마리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공중제비를 한다. 서커스 천막도 단장도 보이지 않는데 저 혼자서 추는 걸 보고 손으로 잡자니 파리는 내 손 끝을 살짝 벗어나며 모습을 감춘다. 쉼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면 사람 눈에 안 보인다는 사실을 이 녀석은 진작에 터득했을까.

     

  차라리 커다란 파리가 집에 들어오는 건 낫다. 걔들은 패턴이 있으니까. 오히려 산 근처에 살면 큰 파리는 그냥 내보내도록 이리저리 손짓하기만 하면 된다. 사방으로 튀는 공에 라켓을 갖다 대기만 하면, 공이 라켓을 맞고 튕겨져 나가듯이 나가니까.

    

  더위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모기나 사마귀도 가끔 집안으로 날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대문을 열면 노린재 몇 마리가 바닥에 붙어있는 날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까마귀는 울고, 고양이도 운다. 발정기에 접어든 고양이 우는 소리는 애 우는 소리 같다고 말한 친구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내게 이런 집에서 어떻게 견디냐고 묻는다. 별다른 비결은 없다. 그냥 너무 익숙해지는 방법 밖엔 없다.

     

  산 근처에 자주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나, 아주 가끔 연기가 이는 숲 너머에서 일어나면 나무 타는 냄새가 이곳까지 온다. 온 집안에 목초액 냄새가 배지 않기 위해선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런 와중에 술 취한 등산객들이 도로 앞에서 상반신을 벗어재끼며 드러눕는 모습도 봤다. 경찰차가 그들을 데리고 들어갈 때마다 사이렌 소리가 온 아파트를 울렸다. 빙판길에 넘어진 등산인을 데리러 자주 응급차가 지나갔다. 저런 꼴을 겪느니 차라리 등산을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물론 등산을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20년을 여기 살면서 딱 세 번 오른 게 전부다. 그나마도 꼭대기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봉우리를 오른 게 전부였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미끄러운 듯싶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일주일 동안 앓는 근육통으로 진화했을 때, 내 등산 인생 또한 거기서 끝났다. 둘레길을 가는 것 이외에는 정상을 향하는 등산은 내 인생에 없는 일이 되었다. 지리산을 같이 오르자는 어느 선배의 제안을 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던 적이 있다. 이때의 쓰라린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회사의 상사나 주변 사람들 중에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적이 없었다.

     

  바닷가 근처에서 서핑을 하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여러 가지 질문의 저의가 ‘산에 사는 나는 바다에 사는 네가 부럽다’라는 걸 알아챈 친구가 내게 하소연했다. 바닷바람 때문에 페인트 한 곳이 다 으스러진다는 하소연, 태풍으로 인해 드는 피해 금액, 수리 및 유지 비용, 겨울의 습기 등등. 나는 그제야 사과했다. 어느 곳에 살든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교훈을 미련퉁이처럼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욕구의 동물이니까. 그러나 산에 사는 불편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옆구리에 단 불편을 생각하곤 한다. 크든 작든 불편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숲 쪽에서 밀려온 바람이 온 집안을 휩쓸고 지나간다.

      

  산 근처에 사는 일이 좋은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벌레를 일일이 잡으면서까지 살 수 있는 곳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주억거리려고 한다. 숲에서 갓 만든 바람은 오직 이곳에서만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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