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트루먼쇼』와 헤어질 '결심'

by GIMIN

※ 영화『트루먼쇼』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트루먼 버뱅크처럼 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시리우스를 가장한 조명 기구가 그의 눈앞에 떨어지지 않았던들, 그는 자신의 삶이 방송되고 있다는 것을 영영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의지를 역설하는 작품에서 나는 완벽한 세계를 먼저 본다. 취직도 보장되고, 대학 등록금 걱정도 안 해도 되며, 자신에게 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계.


간호사로 위장한 아내를 자처한 메릴 버뱅크가 넘은 게 걸리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프로듀서인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슨은 내게「더 록」과 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가 실비아에게 전화로 말한 내용은 내게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이 가짜에 속을 데가 있다. 가짜가 아름다울 때다. 가짜에게 속는 이유는 오직 그것뿐이다. 나머지는 변명에 불과하다.


내게 절세 팁을 알려준 ‘친구’가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들리는 건 유혹과 작당 모의를 넘나드는 교묘한 화술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나를 얼르고 달랬다. 절세라는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내 귀를 닫았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단어를 내 귀는 마치 테니스 네트에 넘어온 공을 받아치는 라켓처럼 튕겨냈다.


친구는 그 뒤로 다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 또한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에 대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내가 멍청한 사람이라서 내게 접근했고, 내가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는 사실을 똑똑히 확인했기에 연락을 끊었나 보다.


나는 가끔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 불임에도 도로를 횡단했다. 2차선 이하의 도로에서 만 그랬다고 변명해 봤자 소용없다. 학교에 늦었다는 핑계로, 버스를 놓친다는 핑계로, 좋아하는 물건을 사야 한다는 핑계로 나는 수도 없이 무단 횡단을 저질렀다.


그 못된 ‘버릇’을 4년 전에 끊었다.『명탐정 코난』덕분이었다. ‘한 번 신호를 어기면 법을 어기게 되고 거기에 쾌감을 느끼면 습관이 된다’고 하는 대사가 나를 붙잡았다. 애들도 안 하는 유치한 짓거리를 한 대가로 나는 만화 속 형사에게 한대 얻어맞았다. 2차원 형사가 때린 주먹을 맞은 데가 제법 얼얼했다. 스스로를 순진하다고 여겼던 나는 기실 그 누구보다 영악했다.


오른쪽에서 누가 내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면 왼쪽에선 누가 ‘호구’라고 손가락질했다. 오른쪽에서 손가락질한 사람과 왼쪽에서 손가락질한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이 있을까.


반성은 기본이요, 세상 배움 또한 계속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그리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영악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을 때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트루먼은 고통을 몰라도 문 밖을 나갔다. 나는 고통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싶다. 유혹이 그치지 않아도, 문 밖에 어둠만이 존재한다고 해도, 하나의 문을 박차고 나간 나 자신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 아르카디아(Arcadia : 고대 그리스의 이상향)엔 내가 없지만, 나는 여기 있으니까.


나는 각박한 세상의 호구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영악한 세상의 사기꾼으로 사는 것 또한 선택하지 않겠다. 나는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한결같이 굳센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의 든든한 파수꾼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결심이 늘 내게 빛나는 길만 보여준 건 아니었다. 결심은 나를 피곤하게 했다. 결심은 오히려 나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결심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결심은 더 안아주면 된다. 그렇게 균형을 맞춰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분명한 점은 진정한 나는 거기에 있지 않다며, 다른 문을 넌지시 열어준 것 또한 결심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마음은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문을 결심은 주저 없이 열어줬다.(2024.8.10)

keyword
이전 25화세월의 집, 녹슬고 녹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