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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와 캘리포니아, 그리고 냇 킹 콜

8월 7일

by GIMIN

※ 이 글은 왕가위의 영화, 오즈 야스지로의『도쿄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만 년 이상의 유통기한이 경과한 파인애플 캔에 대해서는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합니다.’라는 문구를 하지무가 봤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발 없는 새는 알에서 나온 새인가. 양조위를 바라보던 어린 수도승은 무슨 생각을 하며 발우공양 했을까. 금발 가발을 벗은 여인의 머리 위에 내린 비가 막 상실의 감정을 겪은 소려진의 머리 위에도 쏟아질 수 있을까.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연달아 본 하루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였다. 솔직히 말해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놀부심보나, 왕가위 감독이 싫어서 거리를 둔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그의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남들이 보고 매혹당하는 영화를 내가 보고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소심한 사람 소리를 듣겠지만 그때의 나는 제법 절박하게 고민했다. 남들은 그렇게 좋다는 오즈 야스지로의『도쿄 이야기』를 보고 꽤 많이 실망했던 차였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어느 일본 감독의 대답이 도리어 공감이 갔다. 에릭 로메르의 작품을 참 재밌게 봤던 나는 왜 이 작품에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까. 심지어 며느리이자 미망인인 노리코에게 슈키치가 죽은 아내의 시계를 주는 장면에 잠시 뭉클했던 기억도 있는데.



내 안목을 탓하면서 나는 『아비정전』을 보았다. 시계 초침을 닮은 아비의 구두 발자국 소리. 늘어진 어깨. 장만옥의 팔뚝에 비친 푸르고 하얀빛, 코카콜라 병뚜껑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들리는 콜라 병 입구에서 가볍게 탄산 빠지는 소리. 콘크리트 바닥에 살짝 긁히는 콜라병 소리, 슬라이딩 기타으로 연주되는 음악과 푸른 정글. 나는 또다시 내 인상의 명대사인 “이 좋은 걸 왜 진작 못 봤지”를 중얼거리며 영화를 봤다.


도서관에서 빌린 DVD로『아비정전』과 『중경삼림』과 『화양연화』를 7시간에 걸쳐 모두 보았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일수록 일기를 길게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더욱 좋아졌고 좋아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중경삼림』의 첫 번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고, 『아비정전』의 2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비정전』의 마지막 신은 제작 때문에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이 미결성은 그대로 인간 삶이기도 하니까.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펜을 들고 목적지를 물었을 때 이 이야기는 완결된 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지도 않은 『타락천사』에 대한 내 관심을 줄였을 정도로 만족했다. 생각해 보면 『중경삼림』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였지만, 하지무의 사랑이 이뤄질 리가 없다. 이미 지나갔으니까. 완결된 것은 그대로 두는 게 맞다.『화양연화』에서 주모운이 사원에 자신의 속말을 꺼내어 두고 나왔듯이.


그러나, 오! 『화양연화』는 내가 아직 덜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아름다울수록 천천히 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기에, 『화양연화』같은 작품을 볼 때마다, 모르는 대사나 전개 구도를 볼 때마다 다시 해당 시퀀스를 반복해서 봤다.


그런데도 아직 나는 이 영화를 제대로 본 느낌이 안 나고, 그게 나를 화내게 하기보다는 은근히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한동안 이 미소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DVD를 다시 손에 쥐고서야 알았다. 아직 더 볼 게 남았다는 안도감이 부른 미소였다.


폭소도(경관 663이 비누 보고 하는 말에 웃었다) 실실 웃는 것도(아비가 발 없는 새 이야기를 기차 안에서 할 때 실실 웃었다) 아닌 미소. 아름다운 수수께끼는 풀지 않고 오래 보관해두고 싶다. 행여 그것이 썩어 문드러질지라도.


『화양연화』는 언젠가 다시 볼 작품이다. 좋아하지만, 다시 못 볼 것 같은 예감이 내 안에 가득하다. 다만 그 영화를 보면서 느낀 피로감과 나른함이 어디에 있을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이유를 탐구하는 마음을 밀어내자, 호감이 그제야 따라왔다.


감정의 위치를 찾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음에는 지도라는 게 없으니까. 일정한 좌표라는 게 딱히 없으니까.


우리는 머리가 하는 것을 가슴이 한다고 자주 착각한다. 그 오차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게 마음의 지도가 가지는 도법이다. 그러나『화양연화』에 너무 익숙해지면 그건 그것대로 슬플 듯하다. 결국 난『해피 투게더』을 보면서 『화양연화』를 안 볼 지도 모르겠다. 두 어 번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는 보겠지.


나는 기어이『타락천사』를 보았고, 그 이야기는 곧 쓸 예정이다. 그러나 여기선 생략할 것이다. 그건 이 이야기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20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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