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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3. 2024

『180g beats』

Part 5. X-77-39

  다양한 샘플을 한데 엮어서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 앨범의 음악은 영리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시대의 힙합 프로듀서가 익숙한 샘플을 깔끔하게 도려내어 빈약한 자신의 곡을 채우는 선택을 하는 동안, 그는 LP의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까지 가져오면서, 앨범의 깔끔한 사운드에 한결 흐뭇한 미감을 불어넣는다. 당대의 어느 누가 (앨범의 훌륭한 곡 중 하나인)「Candy Funk」와 같은 질감의 곡을 상상하고 만들 수 있었을까.


  우직한 고집과 독특한 감각, 그리고 영리한 프로듀싱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지금 당장 들어도 촌스럽지 않다.「morning」의 과감한 어프로치는 여전히 경악스럽고, 「piano suite/loop of love」를 기민하게 붙이는 재능은 여전히 놀랍고,「음악시간」의 샘플을 가지고 이용하는 짧은 곡인 「보통 빠르게/느리게」의 재치는 여전히 유쾌하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summer 2002」의 사운드가 들려주는 밀도 또한 우리가 미처 접하지 못한 성질의 촘촘함을 내포하고 있다. 턴테이블리즘에 충실하지만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고 중용을 지키는 그이의 음악적 깊이가 이 곡을 대단한 인스트루멘탈 트랙으로 만든다. 랩이 없는 인스트루멘탈 트랙임에도 당당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 트랙은 그이가 개척한 소리의 영토가 상당히 광활하다는 점을 재차 천명한다.


  물론 ‘턴테이블리즘을 제대로 실천한 앨범’이라는 말로는 이 앨범의 성과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앨범에 참여한 래퍼의 랩이 담긴 트랙 또한 인스트루멘탈 트랙에 못지않게 뛰어난 곡이 많다. 랩 또한 자신이 만드는 사운드의 하나로 파악하여 가다듬는 그이의 완벽주의가 이런 성과가 가능케 할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이 앨범은 가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랩의 질감을 입체적으로 접근한 그의 프로듀싱은 이 앨범에 참여한 래퍼의 랩을 뛰어난 결과물로 만들었다. 엠씨 메타 특유의 저음부가 강한 랩과 기타 연주의 루프가 어우러지는 대목은 참 근사하기 이를 데 없다. 나중에 다 크루(Da Crew)의 앨범에도 실린 「일탈충동」에서, Seven이 구사하는 랩의 질감에 맞추어, 드럼의 질감을 바꾸거나, 키보드와 베이스를 가볍게 집어넣는 그이의 솜씨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앨범의 후반부는 가히 그이가 들려줄 수 있는 소리의 진수만을 모아놓았다고 부를 만하다. 「story」에 등장하는 리오 케이코아의 자전적 성격을 반영한 랩에 감각적인 글리산도 주법의 피아노 연주 샘플과 조우케 한 그이의 선택은 탁월했다. 「sign(숨과 꿈)」에서 MC 성천이 한자어가 가득한 라임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할 때, 그이는 미묘한 피치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섬세한 만듦새의 비트로 난해의 대지에 유유히 흐르는 강을 텄다. 대팔의 여유로운 랩이 그윽한 「선인장」에서 그이는 베이스와 드럼에 약간의 소스를 더하며 곡의 그윽함에 힘을 보탰다.


  그이가 쌓고 지은 이 ‘소리의 집’에서 수많은 국내 힙합 뮤지션들이 깨달음과 발전 가능성의 기회를 얻었다. 한국 힙합은 그이의 줏대 있는 소리로 인해 단순한 추종에서 벗어나 더 깊은 영역을 모색할 수 있었다. 도무지 깊어서 헤아릴 수 없는 그이의 소리에 대한 탐구가 이 묵직한 앨범을 낳았다고 생각하니 미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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