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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4. 2024

『GARION』

Part 5. X-81-36

  결성 당시만 해도 당장 나올 것 같았던 이들의 음반은 6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은 그 기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 앨범에 실린 대부분의 트랙은 대체로 결성 초기인 1998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제작되었다. (리믹스 두 곡과 간주곡 「S.L.L.」, 킵루츠가 작곡한 「회상」, The Z가 작곡한 「음의 여백」을 제외한 두 개의 곡은 2000년 이후의 작업이다.) 이들은 이 앨범의 곡을 말 그대로 묵혔다. 그렇게 묵힌 곡을 정말이지 필사적으로 갈고닦으며 때를 기다렸다.

     

  제대로 된 우리말 문장을 구사하는 나찰과 엠씨 메타의 랩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다. (유일하게 랩 피처링으로 참여한 Seven 또한 이 앨범의 훌륭한 명곡인 「옛이야기」에서 안정된 랩 스킬을 발휘한다.) 단순히 단단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의 랩은 이 앨범에서 깔끔하게 계산된 플로우와 딜리버리를 구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90년대 미국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성격을 지닌 곡에서도 이 장점은 흔들리지 않는다. 엠씨 메타의 솔로곡인 「나이테」에서도 이러한 장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1990년대 한국 힙합 특유의 각운 라이밍마저도 이들은 어투를 바꾸거나, 호흡을 바꾸는 식으로, 특유의 단조로움을 상쇄한다.

  

  LP 사운드의 노이즈조차도 통제하며, 스크래치 같은 기법부터 샘플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킬을 구사하고, 앨범의 비트를 치밀하게 구성한 제이유의 비트 메이킹 솜씨는, 이 앨범을 반석 위에 올렸다. 엠씨 메타의 랩은 중저음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찰의 랩은 더블링과 코러스를 정교하게 집어넣는 방식으로 진행한 그의 프로듀싱 덕분에 두 사람의 랩은 좀 더 확실한 변별력을 갖출 수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첫 벌스를 맡은 나찰의 랩 파트는 정교한 층위의 랩과 코러스 편곡은 지금 들어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뿐인가. 「가리온」의 첫 곡을 지배하는 베이스도 그렇거니와, 「언더그라운드」의 먹먹한 비트와 샘플의 조화는 당시의 그이만이 만들 수 있는 ‘곧은 소리’였다. 선명회 합창단이 부른 가곡 「굴뚝」의 피아노 연주를 샘플링하여 피치와 음계에 맞게 편집한 다음에, 「옛이야기」의 비트에 알맞게 집어넣은 그이의 집요함은 해당 곡을 더욱 빛낸다. 「언더그라운드」나 「마르지 않는 펜」의 베이스 음은 하이 텐션의 그루브를 확실하게 획득한다. 독특한 미감을 강하게 쟁취하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면도날도 안 들어갈 것 같이 촘촘하다. 근데 그게 답답하지 않다. 정교함과 세밀함만 한껏 돋보인다. 나는 이 촘촘한 비트가 결국 이 앨범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이스트 코스트 힙합계의 전설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인 토니 도시(Tony dowsey)의 마스터링을 거친 이 앨범은 한층 단단한 결과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침내 발매된 이 앨범에 야유를 보냈다. 이 앨범이 태업의 결과물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 앨범은 그저 조용히 원래 자기가 마땅히 차지해야 했을 왕좌로 천천히 올라갔다. 무사히 대관식을 치른 이 앨범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사람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듯하다.


  이 앨범이 정지(整地)한 대지는 오늘도 싱크홀 하나 없다. 부평초처럼 떠돌던 한국 힙합은 이 앨범에 닿으며, 비로소 완전히 뿌리내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디고 선 대지를 생각지도 않고 나무에 핀 꽃만 바라보는 나를, 이 앨범을 만든 시간이 진중하게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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