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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7. 2024

『Rough Draft In Progress』

Part 6. X-0-93

  할로우 잰의 음악을 듣는 일은 터져 나오는 감격을 온몸으로 껴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Dvaita」의 격정에서 「Blaze the trail」에 이르는 여정은 이 앨범을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솔직히, 들을 때마다 버겁다. 앨범이 발매된 지 어언 17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 이 앨범이 터트리는 감격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싶다.


  더듬거리면서 다시 처음 트랙을 듣는다. 「Dvaita」의 인트로부터 터지는 곡의 사운드는 돌연 다음 대목에서 수그러든다. 샤우팅과 내레이션을 드라마틱하게 넘나드는 임환택의 보컬은 기타 소리에 묻혀있어도 듣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샤우팅이 작렬하는 대목도, 내레이션이 조곤조근 들리는 대목도, 청자로 하여금 기어이 귀 기울여 듣게 만든다. 스크리모나 포스트록, 헤비니스를 이야기하기 전에, 엔비와 같은 일본 밴드의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말 가사를 담은 드문 헤비니스 록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부분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장르와 영향의 의미망을 뚫고 나오는 그들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이, 이 앨범을 뛰어난 데뷔 앨범으로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베이스 연주까지 잘 들리는 녹음을 통해 이들은 스크리모 장르의 음악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Dvaita」의 후주와 연결된 「Spotless」의 긴 전주는 「Dvaita」의 영원의 약속이 이행되기 전에 있었던 마음의 번민과 「Dvaita」의 결심이 만든 다짐 이후에 있었던 일들을 드라마틱한 대비로 엮는다. 폭격 소리를 비롯한 샘플을 삽입한 「Nachthexen」은 전쟁과 기도에 대한 은유와 끝나지 않는 전쟁의 굴레를 묘파한다. 임환택의 내레이션에 수도 없이 박자를 쪼개는 박상철의 드럼은 임환택의 묘사하는 전쟁의 양상에 끊임없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곡 안에 흐르는 테마를 철두철미하게 비춘다.


  단순히 이 앨범이 문명 비판의 세계에만 천착했다면, 이 앨범의 감동은 줄어들었으리라. 하지만 이들은 (게스트로 참여한 옥요한이 힘을 보태준) 「Tragic flaw」의 짧고 굵은 불안을 통해 「Invisible Shadow」에 이른다. 이 곡에서 이들은 존재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다. (「Nachthexen」에서도 등장하던 행진곡 드럼은 이 곡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의 훌륭한 곡인 (그리고 변형된 행진곡 드럼이 인트로를 채우는) 「Empty」 또한 이러한 전환으로 인해 더욱 훌륭하게 거듭났다. 보다 깊숙하고 근원적인 곳에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 이들은,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이들의 걸작)인 「Blaze The Trail」에서 희망의 대서사시를 쓴다. 가사를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외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 섞인 통쾌함이 절로 가슴께에서 인다. 이들은 결국 심연을 대하는 행위가 곧 진실을 대하는 행위임을 이 한 장의 음악으로 통쾌하게 증명했다. 이와 같은 성과를 거뒀는데도, 이들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마주한 진실에 대한 감격을 음악으로 갈고닦았다.


  (물론 이들은 그저 데뷔 앨범을 세상에 내놨을 뿐이지만,) 이 앨범은 어쩐지 2000년대 후반의 첫해에 나와 피맺힌 절규로 나머지 네 해를 증언하는 듯하다. 나는 이들이 처음 접한 심연에서, 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봐야 할 진실을 본다. 나는 그 너머에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앨범의 믿음을 여전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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