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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6. 2024

『청년폭도맹진가』

Part 5. X-26-26

  고함과 함성 속에 울음과 비명이 숨어있다. ‘음악은 현실이 될 수 없다’라는 절망과 ‘음악은 현실을 폭파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이 앨범에서 치열하게 맞부딪친다. 이른바 ‘조선펑크’의 정체가 이 땅에 자리한 ‘저항’이었음을 이 앨범은 넓은 전장으로 표현한다.


  군악대 풍의 브라스가 등장하는 「청년폭도맹진가」를 제외하고, 거의 고경천의 키보드(와 코러스)와 밴드의 연주로만 채운 ‘난투편’은 펑크록 사운드를 고수한다. 그러나 제각기 다양한 성격을 함유하고 있다. 「날이 저문다」의 절규에서 풍자적인 보컬의 「애국가」에서 시작하여 독립군가의 영향을 받은 「청년폭도맹진가」와, 「Jailhouse rock」의 인트로를 오마주한 「티브이파티」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거대 권력이 지닌 힘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패러디하며 절묘한 반격을 가한다. 「청년폭도맹진가」의 여유로운 기타 백킹 연주는 자신만만함으로 가득 차 있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십대정치」와 차승우의 절규가 인상적인 「Viva 대한민국」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세상과 절실하게 드잡이한다. 「잡놈패거리」의 ‘선언’은 그런 맥락을 생각할 때, 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연결된 두 곡인 「98년 서울」과 「정열의 펑크라이더」는 (「98년 서울」과 두 곡의 가교를 담당한 고경천의 키보드도 돋보이지만,) 「잡놈패거리」의 선언을 이행하는 거대한 군상화 같다. 위악으로 점철된 이성우의 보컬과 (입대한 정재환을 대신하여 참석한) 김정준의 베이스는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98년 서울」에서 잠시 선보였던 스카펑크를 ‘청춘예찬편’은 첫 곡인 「성난 젊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T.S.T 혼섹션이 브라스 파트를 맡고, 퍼커션 또한 적극 활용한 이 파트는 그러나 청춘을 예찬하지 않는다. 도리어 청춘의 내면적인 현실을 아이러니로 이야기한다. 「제발 나를」을 장식하는 절규는 가벼운 퍼커션으로 인해 더욱 처절해지고, 「생기 없는 모습」의 떼창은 한결 차분한 어조를 유지해서 더 슬프다. 「너 자신을 알라」는 업템포의 곡임에도 그들의 사유를 막힘없이 자유로이 풀은 냉정한 어조가 곡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앨범의 가장 좋은 곡인 「이 땅 어디엔들」에서 끝끝내 치솟는 힘도 「바다 사나이」의 호기도 이러한 역설적인 ‘예찬’으로 더욱 빛난다. 다양한 성격을 통과하는데도, 뒤엎을 수 없는 절망의 냉철함이 걷을 수 없을 종류의 무게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청춘은 불꽃이어라」는 활활 타오른다. 아마도 그때의 이들이 만든 가장 세련된 곡인 이 곡은, 대니 정의 색소폰 솔로와 (트롬본에 이한진 대신 최선용이 참석한) T.S.T 혼 섹션의 브라스가 스카 펑크 특유의 촌스러운 분위기와 문어체 가사가 어우러져 세월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을 질감을 창안했다.

 

  「날이 저문다」의 석양에 핀 불을 「청춘은 불꽃이어라」에 이르러 이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담으라고 외친다.「전자펑크 리믹스메들리」는 이 결론을 단번에 뒤엎는다. 앨범 프로듀서인 김재준이 만든 프로그래밍 반주 위에서 자신들의 곡을 패러디하는 이들은, 이 앨범에도 주저 없이 가운뎃손가락을 날린다. 자기 자신까지도 비판의 대상에 포함하는 이들의 에티튜드가 이 앨범을 살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현실에서 패배했을지언정, 이 앨범에서 승리했다. 현실의 패배와 절망을 그대로 돌려 승리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이 앨범은 힘찬 함성과 피눈물을 동시에 내뿜으며 내달렸다. 절망이 깐 선로로 (이탈의 가능성도 괘념치 않고)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는 맥락과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우렁찬 기적소리를 내며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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