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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Oct 29. 2024

『사랑이야/토함산』

Part 7. 0-0-100

  그이의 독자성엔 긴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송창식처럼 노래 짓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는 송창식밖에 없다. 그이처럼 노래를 짓고 부르는 가수는 과거에도 앞으로도 나올 수 없다. 그의 노래는 그만이 지닌 후줄근함과 정겨움, 세련됨과 날카로운 직관이 한 몸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몸 안에 그만이 지닌 묘한 비율의 음악 장르와 희한한 감정과 독특한 표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부른 그 의 노래는 늘 이상하고 성긴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그의 노래는 멀쩡하기 이를 데 없다. 통속적, 토속적인 소재나 표현을 썼는데도 그이의 목소리를 타면 그냥 그이의 노래가 된다. 그이가 부른 노래는 그게 단점으로 와닿지 않는다. 아니, 철두철미한 기본에서 길은 그이의 독창적 어프로치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음과 감정(그러나 우리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소리)을 생각하게 한다. 서양 음악을 집요하게 연구한 집념과 우리 음악에 대한 통사적 통찰을(창작의 길을 사실상 멈춘 지금에도) 손에 놓지 않는, 그이의 자유롭고 깊고 유연한 태도가 이러한 기적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설적이기에 폭압적인 당대의 ‘모더니티’가 헤매던 미망(迷妄) 속에서, 그는 개성의 본질과 줏대를 놓치지 않았던 몇 안 남은 뮤지션으로 남아있다.       


  그 이전에도 송창식의 앨범은 많았고, 이 앨범보다 더욱 강력한 앨범도 존재하며, 이 앨범보다 잘 팔린 송창식의 앨범 또한 많았지만, 이 앨범은 송창식의 음악에 있어 참 중요한 시점의 음악을 담은 앨범이다. 가족의 이름을 작사가와 작곡자의 이름으로 넣는 송창식의 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 (물론 이 앨범이 송창식의 30대 첫머리를 장식하는 앨범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 앨범에 이르러 송창식의 음악은 변화한다. 어찌 보면 송창식의 ‘특이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이 앨범에 이르러 송창식 노래는 비로소 송창식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느 누가 트로트 리듬의 「토함산」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겠는가. 마이너 코드의 벌스와 메이저 코드의 훅이 번갈아 등장하는 「사랑이야」의 다이내믹함과 애수 어린 절실함을 누가 이렇게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겠는가. 「나의 키타 이야기」나 「돌돌이와 석순이」를 차지하는 토속적인 소재조차도 그이의 목소리를 거치면서 개성 넘치는 표현으로 승화하지 않던가.       


  스튜디오를 직접 지으면서까지 이 앨범을 꾸린 이는 송창식이지만, 앨범의 레코딩 세션 또한 송창식의 노래를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베이스에 참여한 사르보(적힌 이름으로 추측컨대 아마고 그의 풀네임은 Salvatore Cantone일 테다.), 키보드 세션으로 참여한 프랑코 로마노, 조원익(베이스), 이호준(키보드), 배수연(드럼)의 동방의 빛 멤버들과 김석규(기타)가 참여한 세션은 곳곳에서 존재감 넘치는 연주를 해낸다. 「돌돌이와 석순이」의 훵크와 「나의 기타 이야기」의 훅을 든든하게 받치는 베이스 연주나, 「토함산」과 「병사의 향수」에서 미세하게 템포와 세기를 조절하는 배수연의 드럼, 「돌돌이와 석순이」, 「나의 기타 이야기」에 등장하는 감각적인 건반 터치와 「사랑이야」와 「그 사람」의 애수 어린 지점을 건드리는 키보드 파트는 이 앨범의 수록곡을 다양한 장르로 꽃 피웠다.      


  하지만 결국 이 앨범은 송창식의 앨범으로 우뚝 서 있다. 이른바 ‘송창식 사운드’의 온전하고도 자주적인 첫 목소리를 담은 이 앨범으로 인해, 그이는 소비를 거듭함에도, 그 탕진됨을 모르는 뮤지션의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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