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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Jul 24. 2024

윤곽 잡기 : 세 번의 아사쿠사[浅草]

7월 24일

  아사쿠사[浅草] 세 번 갔다. 한 번은 낮에, 한 번은 밤에, 한 번은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처음으로 간 긴자[銀座] 선 아사쿠사[浅草] 역은 공사 중이었다. 쇠파이프 비계와 철제 울타리가 우리를 맞았다. 엄마와 나는 좁은 계단을 올라갔다.


  아침에 간 이유는 간단했다.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의 셔터 벽화를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 등 뒤에서 도쿄 스카이트리가 땅에 깊숙이 박힌, 거대한 알루미늄 배트의 손잡이처럼 서있었다.        


  12월인데도 전날 23도까지 올랐던 일 때문에 가볍게 입고 나왔건만, 약간 쌀쌀했다.


  카미나리몬[雷門] 바로 앞은 외국인이 많았다. 커다란 빨간 등 밑에서 나무로 조각한 용이 비틀어진 몸으로 굳어있었다.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닌교야키[人形焼]며, 기모노[着物]를 파는 상점, 일장기가 그려진 열쇠고리나 액세서리를 파는 상점, 손잡이 없는 흑단 목검을 파는 상점, 도장을 파주는 상점, 히나[雛] 인형을 파는 상점으로 즐비했다. 화려해도 그다지 오래갈 것 같지 않은 기념품이 넘쳐났다.

 

 센소지[浅草寺] 또한 사람은 많았지만, 무엇보다 사람 옆에서 피어난 향냄새가 더 햇빛을 지지대 삼아 자신의 나팔꽃 줄기를 칭칭 감는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오래된 목재로 만든 법당은 어둑어둑했다. 새전함으로 동전 구르는 소리가 깊었다. 멜론빵을 먹기로 하고 가게를 찾았으나 마침 쉬는 날이었다.


  아사쿠사 키비당고 아즈마[浅草 きびだんご あづま]라는 가게에서 파는 콩고물 묻힌 키비당고(きびだんご : 수수경단)를 먹었다. 알코올만 봐도 얼굴 붉히는 나는 끝내 아마자케[甘酒 : 감주. 우리네 모주와 비슷한 음료다.]를 마시지 못했다.


  문화관광센터 맨 위에 있는 전망대에 들렀다. 상점가의 푸른 기와가 주변 건물보다 밝고 산뜻했다.     




  2년 뒤에 인천에서 나리타[成田]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리무진 버스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이전까지는 오후 4시에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든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노을빛에 물든 메뉴판이 손님을 맞는 식당에 들렀다. 살면서 먹은 최악의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 나고야식 장어 덮밥)거기서 먹었다.


  오후 5시 10분 전이었다. 하늘보다 불빛이 더 밝았다. 간판 불빛으로 인해 주변은 은은한 불빛이 사물 곳곳에 스며들었다. 희미한 그림자가 차도 쪽으로 쏟아졌다.


 문은 노란빛 조명으로 물든, 그래서 붉은빛의 기둥이 더더욱 오렌지색으로 비쳤다.


  상점가 바닥에 드리운 흰 빛이 어둠 속에 스러지는 지점과 센소지[浅草寺] 정문인 니텐몬[二天門] 사이에 노점이 새로 열렸다. 노점 벽에는 화려한 모양의 하고이타[羽子板] 여러 개가, 마치 수컷 공작 허리에 난 깃털 무늬처럼 펼쳐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법당 한구석에 대여섯 개의 야타이[屋台 : 일본식 포장마차]가 열렸다. 번들거리는 사과 사탕 옆에서 가게 주인이 투명한 사각형 도시락 PET 용기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야키소바[焼きそば]를 주걱으로 퍼담았다.


  고구마 스틱을 한 입 베어 물면서 법당 안을 둘러봤다. 어둠이 까마귀처럼 날개를 펄럭대며 기와지붕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근처 드럭스토어에서 샴푸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멘치카츠를 사 먹었다.  


  나오는 길에 도쿄 스카이트리를 봤다. 스카이트리 옆에서 새하얀 달이 짙푸른 밤하늘에 맞서 휘영청 밝았다.      

     



  작년 여행의 마지막 날. 코로나로 인해 미처 들르지 못한 아쉬움이 먼저 오전 9시 반의 아사쿠사[浅草]에 가있었다. 역 안의 천장이 내 키에 거의 닿을 정도로 낮았다. 거의 회색으로만 이뤄진 다른 역에 비해, 나무 무늬, 검은색과, 하얀색과,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석재로 외장을 꾸민 역 안이 훨씬 살가웠다. 세 번째. 들른 아사쿠사[浅草] 이제 조금씩 곁을 내줬던 것이다.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지만, 결국 그 식당에 가지는 못했다. 얼른 숙소에 보관된 짐을 찾은 다음에,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빨리 예약하고 싶었다. (나중에 호텔 앞 짬뽕 가게에서 짬뽕을 면 적은 걸로 먹은 게 마지막 현지 식사였다.) 상점가를 스치듯 지나갔다. 기억은 새록새록 난다는 듯이 싹텄고, 싹튼 기억은 상점가에 새로운 채도를 부여했다.


  아침 공기의 푸른빛이 저 멀리 보이는 도쿄 스카이트리의 윤곽선을 제법 많이 흩어놓았다. 멀리 보이는 모든 것이 마치 꿈속의 풍경이라는 듯이.      


  센소지[浅草寺]에서 제비를 뽑을지 말지를 망설였다. 결국은 자기가 만드는 게 운명이라고, 100엔 동전을 오른손에 꾹 최고 운을 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시간은 없어도 키비 단고(きびだんご) 집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맨 앞에서 기다렸다. 셔터가 올라가도 마수걸이를 시작하지 않았다. 종업원 옆에서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막대기로 아마자케[甘酒]를 휘저었다. 종업원은 옆에서 돈을 세거나, 거스름돈을 가지런히 넣거나, 부채꼴 모양의 그릇을 내놓거나, 미리 만들어온 경단에 콩고물을 묻혔다.


  본의 아니게 오픈런을 한 나는 경단을 받자마자 바로 옆에 있던 의자 없는 테이블로 다. 달달한 맛이 텁텁한 고소함을 입은 채로 입안에 뛰어들었다. 나는 마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패딩으로 인해 두터워진 팔을 들어 옷 주위에 묻은 콩고물을 털었다.


  시부야로 가는 지하철. 내가 앉은자리 맞은편에 네 명의 한국인 가족이 나란히 앉았다. 다들 처음 가본 아사쿠사[浅草]에 들떠있었다. 어느 백화점을 가야지 명품이 싸다면서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넌지시 자식들에게 설명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두 손으로 감싼 핸드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쪽잠을 청했다. 아들로 보이는 남자는 핸드폰 화면을 보느라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그들의 피곤과 설렘과 지루함에 모두 공감하며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부끄러워서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남들의 무관심이 고마웠다.


  아사쿠사[浅草]는 그렇게 내 몸을 세 번 통과하며 잊을 수 없는 푸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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