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98-0-0
엄인호는 이 앨범에서 신촌 블루스를 좀 더 밴드에 가깝게 개편했다. 엄인호의 기타 사운드는 좀 더 여유로운 애드리브 연주와 필링에 충실한 테크닉으로 이 앨범 전체를 우수어린 모놀로그로 채운다.
엄인호의 기타 사운드가 건드리는 슬픔을, 전체 사운드를 책임지는 하몬드 오르간이 가만히 받치는 게 이 앨범 사운드의 기본 바탕이다. 엄인호의 기타 연주로 충만한 「향수」에서 하몬드 오르간 사운드는, 앨범의 기저에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받는 듯, 잔잔히 흐른다.
「비오는 어느 저녁」의 후반부에 잠시 등장하는 재즈 코드와 스윙(Swing)감 또한 이 슬픔을 어쩌지 못한다. 아니, 정경화의 절규로 얼룩진 자리를 애써 넘기려는 안쓰러움이 그 짧은 순간에 들어있다. 이정식의 색소폰 솔로 연주는 이러한 슬픔에 고독을 더욱 강조할 따름이다.
첫 곡부터 「마지막 블루스」까지는 마치 하나의 곡인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앨범의 사운드는 특유의 모노톤에 가까운 슬픔으로 고독한 존재의 모든 저변을 훑는다.
그리움과 옛이야기, 마지막과 빗소리를 말하는 신촌블루스의 '신촌'은 그 자체로 이미 닫힌 세계였다. 엄인호의 신촌은 이미 80년대 후반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시금 「나그네의 옛이야기」를 소환하여 텁텁함을 입힌 그의 정서는 깨달은 자의 후회로 가득하다. 그나마 중간에 등장하는 색소폰 라인이 2집에 등장한 혼 섹션의 화려한 성격을 잠시 재현할 따름이다.
김미옥이 부른 「비오는 날」의 상대적으로 날렵한 우수가, 플루트 사운드와 더불어 A면의 슬픔을 가볍게 마무리하지만, 「향수」의 애잔함에 뒤이은 「이별의 종착역」에서 김현식은 말 그대로 목 놓아 운다. 지병의 고통으로 인해 엇나가는 부분 또한 날 것의 정서로 되려 체화한 듯이 들린다. 그의 보컬은 생명의 불꽃이 잦아드는 순간까지도 그 특별한 빛을 잃지 않았다.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의 이은미가 다시금 무시무시한 공력을 드러낸 이후로,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한 연주곡인 「신촌, 그 추억의 거리」가 비교적 산뜻하게 앨범의 끝을 추렸다. 이 앨범을 듣고 나면, 어쩐지 아쉽다. 80년대의 긴 후일담을 재미있게 듣다가 에필로그를 드는 사람처럼 그냥 멍하니 주저앉게 만든다.
2년 뒤에 4집이 나왔을 때, 키보드를 맡은 안동열과 리더인 엄인호만 남기고, 모두가 역방향 기차를 타고 떠났다. 엄인호가 “이해력이 가장 좋았던 싱어”라 회상했던 정경화도, 이 앨범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은미도,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라는 비범한 곡을 남긴 이정식도 가버렸다. 「이별의 종착역」을 말 그대로 겨우겨우 부른 김현식 또한 차량 기지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이 앨범에 다 들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이제는 이 앨범에 흠뻑 취하기 위해 나이를, 아주 조금은, 더 들어도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