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97-0-0
앨범 전체를 듣기에 앞서서, 「사랑했어요」를 새삼 연거푸 들었다. 역시나 비범하기 이를 데 없다. 편곡을 맡은 김명곤은 은은한 톤의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클래시컬한 피아노 사운드로 김현식의 미성에 격조를 불어넣었다. 배수연의 드럼 연주가 감정의 전환점을 자극하는 동안, 훵키한 톤의 기타 연주가 이 곡의 격정에 혼[Soul]을 배가했다.
이수영의 과묵한 베이스 연주가 곡 후반부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곡은 격정적인 비탄에서 세련미가 흐르는 흐느낌으로 잦아들었다. 그의 베이스 연주는 이 곡의 주인공이 어디까지나 김현식의 미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곡은 신디사이저 연주와 피아노 연주가 얽혀져 만든 짠한 멜랑콜리를 청자에게 전달하며 끝났다.
이러한 화학작용은 「회상」에서도 이어졌다. 김현식의 미성은 감미로운 표현과 자유로운 격정을 넘나들며, 김명곤의 편곡은 이 격정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김명곤이 연주한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에 화답하듯이 노래하는 김현식의 딜리버리는 강력하다.
「어둠 그 별빛」에 이르러 마침내 김현식의 보컬은 무시무시한 제 본색을 드러냈다. 절제와 격조로 일관하던 그의 보컬 또한 이 대목에 이르러 어마어마한 내공을 뿜어냈다.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기타 솔로 연주 또한 김현식의 절규를 더욱 강조했다. 단순한 코드 진행의 곡이기에. 김현식의 표현력과 김명곤의 실력이 도리어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꾸밈음이 매력적인 「떠나기 전에」와, (양인자가 가사를 붙인) 「바람인줄 알았는데」를 필두로 소위 ‘김현식 표 발라드’가 앨범 B면을 가득 채웠다. 1집에도 있었던 「당신의 모습」은 보다 차분해졌다. 특유의 먹먹한 보컬이 일품인 「너를 기다리며」는 그가 단순히 샤우팅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청자에게 확실히 아로새겼다.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는 최이철의 블루스 기타 연주와 김현식의 보컬이 절묘한 지점에서 어우러졌다. 최이철의 밀도 높은 기타 솔로 연주는 그가 왜 ‘당대의 거장’인지를 명쾌히 증명했다. 이런 최이철의 기타 연주 실력에 제대로 응수한 김현식의 보컬은 김현식이 준비된 거장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앨범이 나오고 1년 뒤에 「사랑했어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는 단지 보컬만으로 이 앨범의 주인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점 또한 이 앨범으로 증명했다. 이 앨범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을 만든 게 바로 김현식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이어지는 그의 걸작에 비하면 이 한 장의 ‘발라드’ 앨범은 멜랑콜리하고, 낭만적이고, 달콤하며, 그렇기에 더 감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앨범은 그의 보컬 실력보다 그의 작곡 실력이 더 빛난다. 3집이 그의 절정이었다면, 이 앨범은 그의 탄탄한 애버리지(AVERAGE)였다. 그는 이 앨범서부터 5집(관점에 따라서 6집도 포함할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의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결과물을 절대로 만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