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99-0-0
세탁소를 운영했던 부모님과, 할머니와 동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청년 윤도현의 소박한 마음이 자작곡이자 첫 트랙인 「타잔」부터 드러난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로큰롤로 푼 곡을 노래한 윤도현의 호쾌한 보컬은 그 소박한 마음을 더없이 풍부히 표현했다.
노래 동인 종이연에 몸담으며 음악계에 처음 발을 들인 윤도현은 군대 제대를 하자마자 이 앨범을 발표했다. 그에겐 첫 솔로 음반이었지만, 다음 앨범서부터 윤도현 밴드에 본격적으로 가입하게 될 강호정이 이 앨범에서 그와 처음으로 협업했다. 거기에 훗날 통칭 ‘조동익 밴드’라 불릴 멤버인 베이시스트(이자 편곡자인)조동익, 키보디스트 박용준,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러머 김영석이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으로 참여했다. (윤도현은「임진강」의 피아노 연주와 「깨어나라」의 편곡 또한 직접 맡았다.)
이 앨범은 솔로 가수 윤도현의 존재감을 (대중적으로나 음악적으로) 곧장 알린 앨범이었지만, 훗날 윤도현이 만들 음악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 앨범이기도 했다. 자작곡인 「큰 별은 없어」의 소박한 비판은 이후에 등장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비판과 「꿈꾸는 소녀」의 서정으로 자라났다. 「깨어나라」의 절규는 훗날 「이 땅에 살기 위하여」의 깊은 분노를 예비했다. 「임진강」같은 록 트랙은 훗날 이어지는 (강호정이 작곡한)「먼 여행」와 같은 트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앨범에만 존재하는 반짝임도 있다. 조동익은 자신의 훌륭한 음악적 역량으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을 좀 더 세련된 포크 록 트랙으로 가다듬었다. 윤도현은 원곡인 종이연의 버전보다 훨씬 세련된 보컬을 구사하며 곡에 단단한 사유를 한껏 살렸다.
「사랑 Two」는 이 앨범을 대중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소개한 가장 결정적인 트랙이며, 훗날의 윤도현이 부르는 발라드 명곡들의 시초가 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앨범의 흐름에서는 약간 벗어난 곡이었다. (생각보다 슬픈 사연이 담긴 「너를 보내고Ⅱ」가 이 곡과 같은 결에서 소구되었다는 점도 안타깝지만.) 그런데도 이미 완성도가 높은 윤도현의 보컬은 이 앨범의 소박한 성격과 중구난방처럼 비칠 수 있는 곡을 정확한 딜리버리와 탄탄한 가창으로 보완했다.
이 앨범은 윤도현 자신이 몸소 겪은 자연에 대한 애정과 추억이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앨범에 등장하는 강이나, 해와 산, 별을 비롯한 대자연의 이미지는 윤도현이 겪은 「타잔」의 ‘기억’과 단단히 얽혀있다. 「깨어나라」나 「우리들 함께 여기에」와 같은 후반부의 곡은 바로 이런 이미지를 바탕 삼아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본디 ‘밑그림’이 대개 그렇듯, 이 앨범은 아직 거친 표현 방식과 약간은 어수룩한 주제 의식이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중구난방의 디렉팅 또한 이 앨범의 퀄리티를 저하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윤도현의 보컬과 의식은 이 데뷔 앨범서부터 비범했다. 서투른 걸음일지언정,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이 앨범에 비교적 정직하게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