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과 뮤직파워』

PART 1. 93-0-0

by GIMIN

이 앨범은 CD의 수록곡(순서)보다 LP의 수록곡(순서)가 더 흥미롭다. 때문에 나는 이 앨범을 LP의 수록곡(순서)로 톺아보려고 한다. LP의 순서에 따르면, 양면 모두 그가 만든 신곡으로 시작하고, ‘리듬’을 강조한 ‘대곡’이 그 뒤를 잇는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아무도 없지만」은 신중현의 보컬 베스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곡이다. 곡의 이면에 깃든 우수를 정말이지 그다운 방식으로 적확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중현의 보컬을 베이스 연주와 두 명의 여성 코러스가 제대로 서포트한다.) 이 곡의 편곡 또한 비범하기 이를 데 없어서, 기타 연주와 신디다이저 연주가 번갈아 어우러지는 동안, 중간중간 혼 연주로 곡의 구비구비를 다이내믹하게 강조했다. 이 러한 편곡이 지나치게 찬란해서, 곡이 더욱 처절하게 들린다.


B면을 여는 「너만 보면」은 「아무도 없지만」과 달리 업 템포의 곡이지만, 특유의 능글맞은 그루브를 살린 연주가 훌륭하다. (가사 또한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 묘하게 주술처럼 들린다.)


A면의 ‘척추’를 담당하는 「아름다운 강산」은 내가 아는 한국 가요 중에서 가장 끝내주는 리듬 기타 백킹[Backing : 반주]이 들어있다. 신중현의 이 연주는 음장감이 제법 묵직한 베이스 연주의 도움을 받아, 이 곡 전체에서 말 그대로 꿈틀댄다.


A면의 ‘척추’가 「아름다운 강산」이라면, B면의 ‘척추’는 「힛트곡 메들리」다. 전자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신중현 사운드의 장대함을 펼쳤다면, 후자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신중현 곡의 핵심을 (쾌도난마의 기세로) 꿰뚫었다. 신중현은 이 곡에선 연주만 담당했다. 김문숙과 박점미가 여성 코러스에 위치에서 벗어나 이 곡의 리드 싱어가 되었다. 잠시 「미인」의 가사를 외치다가「님은 먼 곳에」를 부르는 이들의 목소리를, 재즈 빅밴드의 종결부 연주로 든든히 받친 신중현의 편곡 센스는 지금 들어도 훌륭하다.


「저무는 바닷가」,「떠나야 할 그사람」은 이 앨범에서 가장 담백한 사운드를 청자에게 들려줬지만, 신중현의 보컬이 주는 처절함과 잘 어울려서 더 쓸쓸하다. 흥겨울 때도 우울할 때도, 그는 자신의 빛나는 사운드(와 그루브)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건전가요 전의 마지막 곡인 (「힛트곡 멜로디」에 든 버전을 아예 연결곡 취급하는) 「커피 한 잔」은 펄시스터즈의 원곡에 비해 구성이 무척 독특하다. 중반부를 지나며 신디사이저 연주를 시작으로 모든 세션이 다른 코드를 연주하며 갑자기 딴 세상에 가버린다. 바로 그 상태에서 훅이 잠시 치고 빠진다. 다시 곡은 처음으로 돌아가 서서히 페이드 아웃한다. 사라질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듯한 신중현의 60년대 사운드가 잠시 그렇게 드러났다, 사라졌다.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본령이 80년대에도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린 야심만만한 (자전적 성격을 지닌) 복귀작이었다. 신중현이 20년 동안 몸으로 부딪쳐가며 익힌 신중현 ‘필링’의 총결산은 마침내 이 한 장의 앨범으로 다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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