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春(정태춘).朴恩玉(박은옥)』(1985)

PART 1. 95-0-0

by GIMIN

박은옥과 정태춘의 ‘유대’는 이 앨범에서 더욱 굳건해졌다. 정태춘과 유지연의 소위 ‘작곡자-편곡자 관계’ 또한 이 앨범에 이르러 중요한 기록을 하나 더 남겼다. 유지연과 정태춘과 박은옥은 이 앨범에서 (여러 지류가 하나로 어우러지듯,) 한꺼번에 어우러졌다.


정태춘이 직접 작곡한 「서해에서」와 「여드레 팔십리」는 정태춘의 데뷔 앨범에서, (마찬가지로 정태춘이 직접 작곡한)「바람」은 박은옥의 데뷔 앨범에서 가져왔지만, 삶의 주럽과 생의 굳은살이 붙은 정태춘의 목소리는 이 앨범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슬픔을 먹먹하게 표현했던 그의 노래는, 메이저 코드의 「사망부가」에 구성진 구슬픔을 담뿍 덧씌웠다.


앨범의 전반부는 북한강에서 남도를 거쳐 목포에 이르는 산하를 호젓하게 거니는 듯하다.「북한강에서」는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92년 장마, 종로에서」)는 ‘생의 뒤얽힘’의 미학과 ‘연기만큼 핀 안개(「저 들에 불을 놓아」)’라는 표현의 거대한 원류(原流)였다.


「애고, 도솔천아」에서 유지연은 북과 통기타의 조화 속에 어우러진 정태춘의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리듬을 강조하는 연음 연주 위주의 세련된 키보드 연주를 삽입했다. (구성진 가락에 겉돌지 않고 착착 감기는 멋들어진 연주다.) 유지연은 또한 (정태춘의 데뷔 앨범에선 「목포의 노래(여드레 팔십리)」라 이름 붙은) 「여드레 팔십리」에서 해당 곡의 리드 기타 사운드를 마치 가야금 타는 소리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스타카토를 강조하며 기타 현을 거의 뜯다시피 연주한 이 기타 연주는 이 곡이 지닌 정서를 한층 더 강화했다.


정태춘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서정을 박은옥은 「바람」과 「봉숭아」로 보탰다. 「봉숭아」에 등장하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하모니는 전작의 성격을 계승하면서도, 앨범의 흐름에 무람없이 스몄다. 조곤조곤한 기도 같기도 하고 나긋나긋한 민요 같기도 한 박은옥의 목소리는 이 앨범에서 더욱 깊은 서정으로 승화했다.


박은옥이 부른 곡을 거쳐 간 앨범은 「서울의 달」의 도회적 분위기와 「장서방네 노을」의 향토적 분위기를 번갈아 오갔다. 시나브로 저무는 애수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삶은, 마지막 곡인 「들가운데서」에서 한데 어우러졌다.「북한강에서」에 얼핏 보였던 희망은 결국 이 곡에선 이 땅에 남을 수밖에 없다는 체념 섞인 한숨 속으로 침잠했다.


당시의 대중이 알고 있었던 정태춘과 박은옥은 여기서 소식이 끊겼다. 다음 작품인 『戊辰(무진) 새 노래』(1988)에서 불거진 권력에 대한 그의 저항이, 민중의 바다에 뛰어든 그의 행보와 한데 얽혔다. 그와 박은옥은 이 싸움을 위해, 이 앨범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이 앨범이 깃든 땅에서는 영 볼 수 없는 저편으로 이들은 넘어갔다.


이 앨범은 결국 이들이 눈물을 삼키며 두 주먹을 꾹 움켜쥐고 섰던 강의 이편, 곧 이들의 차안(此岸)이었으리라. 그러나 이 차안(此岸)은 이들에게 있어 피안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물가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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