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85-0-0
2002년에 재발매한 이 앨범의 CD는 초판 LP 및 CD와 구성이 약간 달랐다. 초판에 들어있었던 「가고파라」는 재발매 CD에서 사라졌다. 재발매 CD에는 새로 「황천길 remake」가 들어갔다. (초판의 「풍물 1986」도 재발매 CD에선 「풍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곡과 제목만 바뀐 게 아니었다. 수록곡 순서도 달라졌다. 재발매 CD는 결과적으로 「황천길」로 시작해서 (새롭게 들어간) 「황천길 remake」로 닫는 (나름의) 수미쌍관 구조로 바뀌었다. 재발매를 담당한 (이제 사라진) 음반사의 설명은 ‘허술한 점을 보완했다’는 게 다였다. (김수철은 나중에 이 앨범을 재발매 CD로 회상했다. 아마 그가 직접 이 ‘개작’에 관여했으리라.)
김수철이 직접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발매했다고 밝힌 이 앨범은 각 곡의 부제에 붙은 국악기가 해당 곡의 소위 ‘리드 악기’를 담당했다. 「슬픈소리」는 고(故) 성창순 명창(1934-2017)의 창이, 「풍물」은 풍물 그룹의 풍물이 곡의 사운드를 이끌었으며, 「갈등」은 각종 타악기가 곡의 중심에서 맹활약했다. 「황천길 Remake」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드럼 사운드(와 베이스 사운드)가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합심하여 태평소 소리를 뒷받침했다.
특히나 이 앨범 전체에서 신스 패드 연주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황천길」에서 「한」까지 이어지는 앨범 전반부에서 이 신스 패드 연주는 해당 곡의 무드를 잡는, 일종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연주는 「외길」에서는 피리 소리에 리듬과 꾸밈음을 덧대었고, 「풍물」에 이르러서는 록 세션과 풍물을 잇는 가교 역할에 충실했다. (그 와중에, 「슬픈소리」는 창이 북 치는 소리에 어우러지는 소리를 신디사이저 연주가 해치지 않았다.) 「갈등」은 타악기 연주가 신스 패드 연주와 치열하게 조우했다. (「갈등」 같은 곡이나, 「풍물」의 후반부는 분명 우리 음악의 당당한 소산이었다.)
이 앨범은 관점에 따라 ‘풍부한’ 소리를 지닌 국악 앨범처럼 들리고, (오리엔탈리즘이 약간 깃든) 우리 음악의 미감이 담긴 인스트루멘탈 앨범처럼 들린다. 정악의 음악 이론을 바탕삼은 그의 소리가 생각보다 ‘모던’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 점은 「풍물」이 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위해 김수철이 위촉받아 작곡한 곡이었다는 점과 아예 무관계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김수철의 첫 국악 앨범인 『金秀哲』(1987)보다 비교적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앨범은 순응의 산물이 아니었다. 이 앨범 되려 그의 자연스러운 관심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이었다.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팝에 심취하며 공부한 그의 자세는, 국악을 공부할 때에도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이라는 두 카테고리만으로 완전히 살필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소리를 그는 깊이 파고들었다. 이 앨범은 바로 그 ‘공부’의 소산(所産)이었다. 그가 경계 없는 소리를 탐구했기 때문에, 그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이자 베이시스트이자 키보디스트이자, 소리꾼이자, 작곡가이자, 편곡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경계 많은 이 땅에서 경계 없는 소리를 탐구한 그는 ‘크로스오버(Crossover)’라는 개념이 제대로 이 땅에 정착하기에 앞서, 음악 사이를 가로 지르는 ‘벽’을 허물기를 (상업적 실패를 거듭했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음악엔 한계가 있을지언정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이 앨범은 당당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