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밖이 어두워졌다. 창밖을 내다봤다. 비가 오고 있었다. 이제 메마른 흙에 물이 들어가고, 나무며 풀이며 꽃도 싱싱하게 자라겠지.
창밖은 누런 하늘이 펼쳐졌고, 어둑어둑했다. 비가 쏟아지는 방향으로 수도 없는 빗금이 그어진 듯했고, 우산을 뒤집어쓰고도 비를 맞은 사람은 황급히 아파트 입구나 지하주차장 안으로 뛰어갔다. 저 사람들은 비를 피하지만, 비를 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끄러웠다. 하늘을 대신하여 천둥과 번개가 대신 나를 꾸짖었다.
고등학교 때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비를 맞은 채로 걸어가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비는 송곳처럼 내 머리 위에 쏟아졌고, 안경 렌즈에 흐르는 빗물이 세상을 헤어젤처럼 뭉그러지게 만드는 것 같았다. 버스기사는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내가 우산을 쓰지 못하고 온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비만 오면 파전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고 비만 오면 라면이 생각난다는 사람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피자를 시킨다고 굳이 동네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사 온 사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우산을 들고 오는 와중에서도 손에서 피자를 놓지 않았다. 그는 피자가 든 상자를 젖게 하지 않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되돌아왔다. 물이 뚝뚝 흐르는 가운데에도 그는 샤워기를 틀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태풍이 오는 날, 입영 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들어간다는 알림이 나올 때 엄마와 나는 근처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 소파 등받이에 레이스 천이 쓰인 말 그대로 옛날 다방이었다. 엄마는 커피를 마셨고 나는 유자차를 마셨다. 따듯했다. 따듯한 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이제 겪을 고난이 두려웠다. 작별의 시간을 어영부영받은 채로 들어가면서 받은 얼차려를 나는 아직도 지붕 처마에서 오들오들 떨던 빗방울과 더불어 기억한다.
햇빛과 구름이 잠시나마 잘 어우러지면, 순식간에 보라 빛 세상으로 바뀔 때도 있다. 주로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만나는 빛이었다. 철로 만든 방벽 같았던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노랗게 드리운 날이면 동네는 어느새 장엄한 하늘 밑에 우뚝 선 위용을 잠시나마 뽐내는 것 같았다. 초록색으로 물든 숲은 그즈음에 더 깊은 초록색을 드러내곤 했다.
우산을 들고 비가 쏟아지는 곳을 걸으면 우산에서 빗방울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때는 그 소리가 옛날 들었던 LP판의 지지직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이어폰으로 듣던 시절, 나는 내가 들은 CD가 LP의 음원을 그대로 복각했다는 생각에 한쪽 이어폰을 뺀 적이 있다. 내가 듣던 노이즈는 CD 플레이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쓰고 있는 우산 위에서 나왔다. 나는 웃으면서 다시 이어폰을 끼웠다.
조심스레 창을 연다. 차가운 빗방울이 손등을 때린다. 미처 알지 못한 혈자리를 물로 된 침으로 맞는 느낌이다. 무정한 사람 되지 말라고 하늘이 굵은 빗방울을 세게 놔주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