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57-0-0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이 뚜렷했다. (아, 이윤정이 중간에 탈퇴한 일은 ‘계획’이 아니었다.) 이 앨범은 바로 그 발칙한 계획의 발칙한 끝이었다. 의도적인 질감으로 뿅뿅 거리는 전자음과, 강기영의 독특한 베이스 연주가 희한하게 얽히는 「바보버스」에서 이들은 명확히 선언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무 말도 할 게 없’다고. (사실 이 곡은 그 한 마디를 제외한 나머지를 딴소리로 채운 곡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앨범이 이들이 이전에 비교적 잘 챙기지 못했던 서정적인 면을 고르게 챙겼다. 「조금만 더」에서 일렉트로니카 비트와 기타 톤은 생각보다 섬세한 보컬 멜로디를 바탕 삼았다. 고구마(권병준)의 샤우팅이 잠시 이 멜로디를 흩트려 놓지만, 이 또한 잠시에 불과하다. 과대망상으로 인한 공포를, (문장 구조가 같은) 반복적인 문구의 뉘앙스 변화와 노이즈 기타 연주로만 표현했던 「아이스크림」의 앞에 서 있는 건, 위악적인 고구마(권병준)의 보컬을 먼저 앞세웠지만, 서정적인 정조가 선명한 「아직도 눈이 내려」다.
물론 이들의 조소 또한 이 앨범에 여전히 가득했다. 거의 동요풍에 가까운 「거북이」에서 이들은 다수에 희생된 소수에 대해 작은 연민을 드러냈지만, 중간에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가져와 거북이가 이기는 ‘중계방송’을 난데없이 갖다 붙였다. (이 ‘방송’이 흐르는 동안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거북이가 이긴다는 건 ‘개소리’다.)
「계단」의 ‘계단’을 ‘Get Down’으로 발음해서, 저속한 행위에 대한 역겨움을 계단 내려가는 방식으로 재밌게 표현한 점이나, 「토끼 사람」의 초현실적 업템포 비트를 지그시 누르는 「마이너스」의 디스토션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이 아무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내세우며 더 막 나간다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이들의 음악에서 두 개의 간극으로 자리매김한 조소와 서정은 이 앨범에 이르러 마침내 균일하게 (그러나 타협하지 않고) 연합했다.
「사건」이 (우리 안의 ‘사건’을 강조하며) 끝나면,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가장 훌륭한 곡인 「12시」의 인트로를 장식하는,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가 등장한다. 세 명의 멤버가 류금덕의 코러스와 더불어 부르는 이 노래는 그저 세 번의 벌스(Verse)로만 이뤄졌다. 재즈 코드를 사용하는 피아노 연주와 하이햇(Hihat) 소리를 강조한 드럼 연주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한데 얽힌 이 곡의 서정은 서늘하고 황홀하다. 초현실적인 전위와 의도치 않은 위악적 서정이 계속 드잡이하던 앨범은 이 곡의 조곤조곤한 서정 속으로 사라졌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비범했던 이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끝맺었다.
여운이 짙은 「12시」 덕분에, 이 앨범이 소위 ‘삐삐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는 사실이 전혀 아쉽지 않다. 다 말하는 것 같지만, 끝끝내 청자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 이들은 미련없이 깔끔하게 이 집을 해체했다. ‘문화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시작했던 이들의 행보는 이 앨범을 통해 완전 연소를 이뤘다. (달파란과 박현준은 추후에 이윤정과 더불어 미니 앨범을 냈지만, 이는 다분히 일회성 ‘컴백’의 성격이 짙었다.) 하여튼 한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이들만큼 멋있게 지은 팀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