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공간 사옥의 외벽을 감싼 담쟁이덩굴의 초록빛이 웅숭깊었다. 혜화역에서 탄 버스가 정류장에 내렸을 때, 흐린 하늘에 머물던 바람이 담쟁이 잎을 짧은 손톱 끝으로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거쳐간 율곡로는 율곡터널이 되었고, 터널로 들어가는 내내 비가 오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나는 괜스레 심란해져서 돈화문(敦化門)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시를 입은 외국인과 한복을 입은 외국인, 지도를 든 외국인이 서성거렸고, 언어도 중국어며 영어며, 프랑스어를 비롯한 언어가 마치 태풍 부는 날에 이곳저곳에서 마구 닥치는 바람처럼 돈화문(敦化門) 앞 광장을 떠돌았다.
매표소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가 표를 받았다. 아직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나는 돈화문(敦化門) 안으로 들어갔다. 갓을 쓰고 도포까지 쓴 외국인이 내 옆을 지나쳐서 돈화문(敦化門) 밖을 나갔다.
진선문(進善門) 앞에 주저앉은 두 명의 외국인을 보면서 나는 카메라를 꺼냈다. 궁궐에 자주 들렀지만, 궁궐 사진을 찍는 건 처음이었다. 가방 안 비닐봉지에서 카메라를 꺼내 조립하는 동안 꼬리 긴 까치 한 마리가 지붕에 앉았다.
목적지에 가기 전에 먼저 인정전(仁政殿)이나 다른 전각을 보고 싶었다. 인정문(仁政門)을 통과하려는데 눈앞에 굵은 빗방울이 보였다. 독일어를 쓰는 외국인 가족이 비를 피해 인정문(仁政門) 처마 쪽으로 몸을 피했다. 나는 우산을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박석 사이로 자란 듯한 품계석(品階石)이 줄지어 있는 자리 위로 비가 내리고 회랑 안으로 대피한 사람들은 굵어져 가는 빗줄기를 바라보거나 회랑의 처마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나는 왼쪽 회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정전(仁政殿) 바로 근처에 있는 회랑에 이르러서야 나는 우산을 펴고 인정전(仁政殿)으로 갔다.
인정전(仁政殿) 처마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비가 풀잎을 때리는 동안 프랑스어를 쓰는 가족은 전각 안의 모습을 살폈고, 중국어를 쓰는 어머니와 아들 뻘 되는 사람은 남산타워를 가리켰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았음직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온 백인 부부는 전각 바로 옆에 있는 댓돌에 주저앉아 비를 보거나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거나 했다. 반대편 회랑에서는 한복을 입은 두 명의 여자가 치마 앞자락을 올린 채 인정문(仁政門) 쪽으로 종종걸음 쳤다.
비가 그치고 사람들이 앞뜰로 나오자 나는 우산을 접으면서 인정전(仁政殿)을 나왔다. 흙바닥이 있는 곳에서 우산에 묻은 빗물을 조심스레 털었다. 빗물이 팬 듯 한 고랑에 흙탕물이 가득 흘렀다. 운동화를 신고 온 게 다행이다 생각하며 나머지 전각을 살폈다. 그러나 인정전(仁政殿)에서 느낀 감흥보다는 덜 했다. 몇몇 전각이 내부 공사 중이었던 탓에, 울타리가 쳐져 있던 곳이 많았다.
창경궁(昌慶宮)으로 가는 출구에 이르러서야 시간을 봤다.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살핏하고 다소곳하여 도리어 정겨운 낙선재(樂善齋)를 보고 오는 길에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 3시였다. 창경궁(昌慶宮)으로 가는 출구 바로 옆은 비원(秘苑)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안내원이 나왔다. 티켓에 새겨진 QR 코드를 기계에 갖대 댄 나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입구 안으로 들어왔다.
다 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안내원이 잰걸음으로 후원(後苑) 쪽으로 향하는 길을 앞장섰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모두 안내원의 말을 듣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