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n eyeS』

PART 5. X-98-67

by GIMIN

이 앨범은 나얼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가 나를 보네」의 훅이나 「With coffee」의 훅을 맛깔나게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나얼 밖에 없다. 미디엄 템포의 곡에 흑인 음악의 숨결을 꼼꼼히 부여한 그의 보컬은 이 앨범의 핵심 동력이었다. (또한 이 앨범에서 나얼은 「No Day But Today」라는 훌륭한 곡을 만들고 불렀다. 하지만 이 앨범만큼은 이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만든 윤건이 나얼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앨범을 만들기 전의 윤건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몰려있었다. 윤건은 그야말로 ‘작정하고’ 이 앨범에 들어갈 곡을 만들었다. 이 앨범의 가사가 주로 신승훈이나 김건모의 발라드 작사를 담당한 한경혜와, 핑클이나 젝스키스, 보아와 쿨의 노래를 작사한 김영아가 담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ong of the rain」만이 이 앨범에서 유일한 윤건이 작사까지 맡은 곡이었다.) 이 앨범은 결과적으로 미디엄템포의 어반 R&B로 수렴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윤건은 생각보다 다양한 장르를 이 앨범의 수록곡에 심었다. (015B의 원곡을 리노베이션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두번째 이야기」에서 허니 패밀리를 비롯한 래퍼들의 랩을 R&B와 함께 무리 없이 프로듀싱한 그는 (김정호의 원곡인) 「하얀 나비」를 매력적인 미디엄 템포의 R&B 곡으로 프로듀싱하며 앨범에 사뭇 신선한 미감을 부여했다. 절박한 심정에서 만들었다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윤건의 여유로운 실력이 이 앨범에 고스란히 들어있는 셈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하는 (이 앨범에서 특히 어반 R&B에 충실한) 「Song of the rain」 또한 빗물 소리를 적절히 샘플링한 윤건의 능력이 부드럽게 빛난다.


윤건의 감수성은 이런 그의 능력 덕분에 이 앨범에서 더욱 생생히 살아있다. 「벌써 일년」을 피아노 변주곡으로 만든 「Piano nocturn(벌써 일년)」은 이 앨범의 감수성을 잘 드러낸 숨은 보석이었다. 수파쿨($upaCooL)의 서정환이 한 랩과 나얼의 보컬이 유태준의 라틴 기타 연주와 만난 「Love is Over」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리듬 악기 사운드와 퍽 잘 어우러지며 섬세한 감성을 차근차근 펼쳤다. 온전히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운드로 만든 「희망」과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가 인상적인 「언제나 그랬죠」가 같은 미감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윤건의 이런 섬세한 감수성 덕분이었다. 그의 감수성은 「그녀가 나를 보네」의 비감(悲感)과 「With coffee」의 감미로움을 한데 아우를 정도로 광범위했다.


이 앨범에선 윤건의 목소리가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녀가 나를 보네」의 벌스 탑 라인을 노래한 윤건은 (박화요비의 코러스와 더불어) 자신의 보컬을 통해 곡의 무드가 어떤 것인지를 청자에게 확실하게 들려줬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이 지은 곡에 적확한 감수성을 다잡으며, 나얼의 목소리에 (곡의 호소력을 강화한) 더 큰 호소력을 보탰다.


이근형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청명하게 들리는 「벌써 일년」을 이들은 맨 마지막에 작업했다. 새벽 물안개 같은 맑은 비감(悲感)이 생생한 이 노래는 오직 그때의 윤건만이 만들 수 있었고, 그때의 나얼만이 부를 수 있었다. 이 앨범을 말하며 한국 R&B의 새 역사를 썼다느니 한국 R&B의 대중화에 앞장섰다느니 하는 말은,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사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이 곡의 시린 감수성을 온 가슴으로 받고 싶을 뿐이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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