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69-62
「들꽃」의 인트로를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연주가 서서히 열어젖히는 순간부터, 이 앨범은 다른 세계로 문득, 건너간다. 한 서린 듯, 천형(天刑) 받은 듯, 구원 바라는 듯 한 김두수의 목소리는 차안과 피안 사이에서 번민하는 혼처럼 이 땅에 어느덧 현현(顯顯)한다.
(다른 데는 일체 손대지 않고, 게인[Gain] 만을 높인 마이크로 녹음한) 김두수의 목소리가 이 ‘신비로운’ 음악을 이끈다는 점을 상기할 때마다 새삼 경이롭다. 일반적으로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 거는 리버브조차 이 앨범은 (믹싱 과정에서) 거의 쓰지 않았다. (그의 다른 앨범도 비슷하지만) 이 앨범은 믹싱 과정이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음원 자체에 손댄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때문에 자세히 들으면 꽤 많은 잡음이 들린다. 이 앨범은 그 ‘흠결’을 밭에 자란 잡초를 내버려 두듯 내버려 뒀다. ‘인공적’이고 ‘매끄러운’ 기존의 앨범 사운드와 이 앨범의 사운드는 벌써 이 대목에서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 아코디언이나 오르간 같은 기명악기, 종과 풍경을 비롯한 체명악기. 호른과 하모니카를 비롯한 관악기가 이 앨범의 패드 사운드를 보강한 부분도 제법 선명히 들린다. 「보헤미안」에 들리는 첼로 연주는 해당 곡의 단선적인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충실히 보완했다. 「19번지 블루스」에 등장하는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기타 연주 또한 약간의 트레몰로 주법을 더하며 곡의 사운드를 보충했다. (손진태와 정유천 또한 자신들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이 앨범의 수록곡에 운치를 더했다.) 「시간은 흐르고」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김한아의 호른 연주 또한 자칫 지나치게 삭막하고 쓸쓸할 뻔했던 이 앨범의 사운드를 흐뭇하게 가꿨다.
이 앨범에서도 김두수는 도덕경(道德經)의 향취와 육신(肉身)의 한계를 각각 씨실과 날실 삼아 엮는다. 「방랑부」에서 웃으며 길을 잃는다고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도 「들꽃」에서 길 잃은 아이를 자신처럼 여기며 가엾이 여기는 그의 목소리에도 애상과 정조가 절절히 배어있다. 초극의 의지를 담은 「보헤미안」에서도 떨리는 목소리는 숨기지 않은 그는 「나비」와 「해당화」의 ‘사유’를 무덤덤하게(그러나 섬세하게) 노래하는 대목에서도 그 특유의 향취와 몰입을 잃지 않았다. (리버브를 줄이며, 인간의 몸을 얻은,) 체념마저도 곱씹어 사유하는 이 앨범의 명상이 단순한 ‘일탈’로 비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새벽 비」와 같은 곡을 맑고 단정히 부르는 김두수의 결심이 번민이라는 흙을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이 앨범을 통해 드높은 자유와 방황은 결국 같다는 점을 역설했다. 「추상」이나 「Romantic Horizon」과 같은 대곡에서도, 자신의 굳은살만을 남기고 다 버리길 주저하지 않는 그는, 이 앨범에 이르러 마침내 맨얼굴(에 가까운 결과물)을 청자에게 처음 들려줬다. 그는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작업을 황무지에서 텃밭 일구듯이 일구면서, 이 앨범의 ‘사운드’를 겨우 사수했다. 이 앨범의 사운드에서 ‘신비’를 말하기 전에, ‘진보적 태도’와 ‘영적 직관’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이 점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의 신비는 지금 여기 현실에 뿌리내린 신비이며, 그의 영적인 직관은 그가 살면서 얻은 수많은 굳은살과 주름살로 이뤄진 직관이며, 그의 진보적 태도는 자잘한 실수까지도 꾸밈없이 청자에게 들려주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의 태도에서 왔다고. 바로 그 자리에서 왔기에 그의 ‘자유혼’은 쉬이 타인의 생(生)에 가닿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