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65-60
정재용이 작곡하고 (이하늘과 같이 작사한) 곡인 「사랑을 아직도 난」을 부르는 조원선의 목소리는 (해당 곡이 특유의 비트감이 한껏 살아있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덤덤해서 더욱 슬프게 들린다. 「기다리고 있어」는 김창열의 보컬이 한결 자연스럽게 들린다. (적어도 이 곡에 나온 그의 보컬은 이전의 그가 구사했던 ‘기능적인 보컬’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나얼이 속해있었던 그룹인 앤썸(Anthem)의 코러스가 후반부를 장식한 (특히나 나얼의 ‘서포트’가 매우 훌륭한) 이 곡은 기존의 디제이 디오씨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영역을 헤짚는다. 통렬한 스킷(Skit)인 「Someday」 뒤에 이어진 「D.O.C. Blues」 또한 매우 절절하게 들린다. 이 앨범은 비감(悲感) 섞인 우울을 (「포조리」와 「L.I.E」의 ‘저항’과 같이) 비교적 세심히 다뤘다.
이 앨범이 나왔을 당시에 한국 대중음악계에선 정말이지 다양한 힙합 앨범이 나왔다. 그중 대다수의 작품이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졌다. 지금은 결국 단 두 장만 남은 듯하다. 언더그라운드에선 『180g beats』(2000)가 살아남았다. 오버그라운드에선 바로 이 앨범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 앨범을 낼 당시의 DJ DOC는 한창 암흑기를 보냈으니, 결국 이 앨범 또한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왔다고 여겨도 무방하리라. 『180g beats』가 지금 들어도 촌스럽게 들리지 않는 세련된 비트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구축했다면, 이 앨범은 당대의 한국 클럽 뮤직 사운드 프로듀싱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힙합(및 흑인) 음악이 빼곡하게 담겼다.
“거리의 힙합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냐”는 (애매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욕설로 ‘때웠던’ 그 당시의 국내 힙합 음반과 “자신이 한국의 힙합을 바로 새울 것”이라고 외쳤던, (똑같이 추상적인) 과잉 ‘소명의식’에 빠진 (음악적 내용물 자체가 빈약한) 그 당시의 국내 힙합 음반 사이에서, 이 앨범은 그 당시 한국 ‘대중음악’에서조차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의 어프로치를 이 앨범의 힙합(과 흑인음악에) 아낌없이 담았다. (물론 이들이 이를 ‘정확하게’ 노리고 앨범을 만든 건 아닐 테지만) 지금 들어도 이재용과 이하늘의 랩핑은 단순한 라임(과 플로우 스킬)을 지녔지만, 이들은 이들이 직접 겪거나 생각한 스토리를 에고(Ego)나 자기 검열 없이 청자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포조리」와 「L.I.E」만 그런 게 아니다. 유건형이 편곡한 (마빈 게이의 「Sexual Healing」을 샘플링한) 「Analog」에서도 이러한 미덕은 확실히 빛났다.
흔하디 흔한 재료에 세밀하고 독특한 비트를 첨가한 이하늘의 영리한 프로듀싱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훌륭해졌다. 「포조리」의 다음에 (의외로 섬세한 이하늘의 편곡 솜씨가 돋보이는) 「Boogie Night」와 「Run to you」 같은 곡을 배치한 이들은 「포조리」로 수렴할 수 있을 날카로운 ‘풍자’와 「Run to you」로 수렴할 수 있을 ‘음악적 센스’가 같은 에너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스피릿을 전면에 내건 이 앨범은 ‘스피릿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와 같은 (이 앨범의) ‘현실감각’은 이 앨범에 쓰인 샘플링 기법에 (맹목적인 추종이란 꼬리표를 떼고) 충분한 당위성을 안겨줬다. 이 앨범은 풍자와 조소와 자신들의 치부(혹은 치욕)와, 턱 끝에 매달린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의 떨림을, 결코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되려 빛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