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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창덕궁(昌德宮) - 3

by GIMIN

안내원은 관람정(觀纜亭)으로 내려가는 비탈길 앞에 모두를 모이게 했다. 부채꼴 모양의 바닥을 한 특이한 건축양식을 설명하면서 마치 정자가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설명을 마친 안내원이 자리를 비키자, 몇몇 사람이 정자 쪽으로 내려갔다.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觀纜亭)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정자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 나는 수면 위에 퍼진 연잎을 바라봤다. 연잎은 마치 초록색 거품처럼 정자 곁에 붙어있었다. 정자를 지나 돌다리를 건너는 동안 물결이 돌에 깨지면서 연못에 와르르 떨어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존덕정(尊德亭) 같은 특이한 정자의 생김새에 감탄하거나, 폄우사(砭愚榭)에서 쉬거나 승재정(勝在亭)까지 올라가서 연못을 살피거나 전각 사이로 핀 참나리꽃이나 수줍게 빗물을 머금는 듯이 꽃잎을 닫은 나팔꽃이나 아직 푸릇푸릇한 단풍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사이에 안내원은 오르막으로 가는 입구에서 사람들을 불러보았다.


언덕을 또 하나 넘으니 대문이 나오고 안으로 들어가니 선향재(善香齋)와 연경당(演慶堂)이 나왔다. 비가 오는 탓에 집 안의 모든 문을 막았다고 안내원이 말하면서 댓돌에 신발을 벗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닫혀있던 문을 전부 활짝 열었다. 감탄성(感歎聲)이 주위에서 일었다. 프레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사진 찍기 바빴고, 건너편에 있는 문으로 나갈 때까지 사진 포즈 취하는 사람들과 사진 찍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겹치지 않게 찍기 위한 조용한 싸움(?)이 이어졌다.


안내원을 따라 나오니 아까 불로문(不老門)이 있던 자리와 우리가 지나온 길이 건물 건너편에 보였다. 여기서부터 안내원은 단번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주의를 주면서 산길을 올라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올랐을 때 안내원은 올라온 사람들에게 숲을 둘러보면서 크게 한숨을 쉬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쓴 나는 결국 그 시원한 공기를 체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초록빛과 회색과 고동색으로 물든 세상은 부족한 숨에 더욱 생동하는 색채로 피어나는 듯싶었다.


내리막길은 주합루(宙合樓) 옆 서향각(書香閣) 뒤편에 난 담장을 왼쪽에 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몇몇 아이들이 다리가 아프다며 부모를 졸랐다. 솔직히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어도 이 날씨에 이 정도로 걸으면 지칠 법도 했다. 길은 다시 원래 우리가 지나온 길로 나왔고, 이내 후원 입구가 나왔다. 안내원은 인사하지 않았다. 나는 풋내와 땀내를 구분하지 못하는 몸을 이끌고 곧장 돈화문(敦化門) 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남산에 있는 서울타워 쪽까지 먹구름이 여전히 짙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도 이온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산 이온음료를 그대로 집에 가져와서 마셨다. 마스크를 벗으니 풋내와 땀내에 절은 내 몸이 무거웠다. 가을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혼잣말에 옴씰거리며 괜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수를 넣고 저을 때마다 콩국 속에 맺히는 순두부처럼 굳어지는 것이다.(2024.8.14 ~ 202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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