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91-63-29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도 「비둘기의 꿈」이나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이 두 곡에서 들리는 박은옥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들리는 데도 그렇다. 이 두 곡이 어디서 왔는지를 잘 아는 데도 그렇다. 이 앨범이 지금처럼 ‘호락호락’한 환경에서 나온 앨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양단 몇 마름」이나 「저 들에 불을 놓아」에 깃든 (박은옥의 목소리에 깃든) 묵은 슬픔이 내겐 도무지 걷히지 않을 종류의 슬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앨범의 절망은 너무나 시리고, 매우 뚜렷하다.
이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비로소 깨달은 게 있다. 이 두 곡이 없었던들,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드높은 절창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비둘기의 꿈」이 지닌 한 줌의 ‘햇살’이 없었던들, 이 앨범엔 먹장구름만 가득 끼었으리라. (정태춘과 바리톤 박장섭이 함께 부른)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 들리는 정태춘의 목소리는 (이 앨범이 나올 당시에도) ‘연대’와 희망찬 ‘미래’를 ‘믿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듯이 들린다. 그의 ‘고백’은 (전작인 『아, 대한민국』[1990]의 ‘사설[辭說]’을 줄이고) 삶의 모든 풍경을 그린 이 앨범이 (특히 후반부 노래에 밀집한) 이 두 곡의 ‘빛’을 안료 삼아 그린 ‘풍경화’라는 걸 확실히 알려줬다.
그러나 (저 두 곡에서 희망을 믿어 의심치 않던) 그의 목소리는, 앨범 후반부의 ‘회한’과 만나면서 현실로 착 가라앉았다. 「사람들」에서 사운드가 (마치 파노라마 사진처럼) 드넓게 그리는 주변 풍경도, 「L.A. 스케치」의 유달리 긴 가사가 후반부의 ‘총격’에 다다르는 대목도, 「나 살던 고향」에서 (소위 ‘뽕짝’의 통속성과 국악을 결합하여) ‘고향’의 의미를 은근히 전복하는 대목도 정태춘은 모두 혼자서 소화했다. (이 앨범에 거의 모든 수록곡의 편곡 작업과 기타 연주를 함춘호가 전담했지만,) 이 3곡의 편곡(과 기타 연주) 또한 그와 함춘호와 함께 작업했다. 이 3곡의 음악적인 성격은 앨범 전반부에 있는 곡들에 비해서도 꽤 다양했지만, 정태춘의 목소리만 이 ‘노래’들에 들어있는 덕분에, 끝내 흐트러지지 않았다.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유달리 감격스럽게 들리는 이유는 단조와 장조를 넘나드는 곡의 보컬 멜로디가 정태춘의 우수 어린 목소리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한없이 단조 위주의 편곡에서만 맴돌던 이 곡의 편곡은 (저 두 곡의 ‘희망’을 암시하듯) 비둘기를 노래하는 대목에서 뭉클한 장조 멜로디를 언뜻언뜻 드러냈다. (이 곡은 그러한 전환이 매우 순차적으로 진행되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들린다.) 정태춘의 목소리는 선을 넘지 않는 ‘울분’을 이 멜로디에 담아 부르며 불안한 희망을 ‘표현’했다. 박은옥의 목소리는 이 대목에 이르러 (말 그대로) 비둘기처럼 날아올랐다. 「저 들에 불을 놓아」의 착잡한 슬픔이 티 없이 맑은 하늘에 이르는 이 앨범은 결국 우리는 저 멀리 날아갈 거라는 은밀한 예지(혹은 기대)를 전하며 자신의 차례를 마쳤다.
음반 사전 심의 제도에 본격적으로 저항했던 이들의 투쟁은 고통스럽고, 지난했고, 처절했다. 이 앨범 자체를 그대로 발매하는 일이 곧 저항이었기에, 이들은 타오르는 불과 희망과 회한과 피로와 힘겨운 나날을 있는 그대로 노래했다. 이 앨범은 왔던 길을 톺아보며 앞으로 나갈 길을 다잡는 앨범이다. 때문에 이 앨범이 표현한 회한의 깊이는 이들이 정말 힘겹게 발견한 희망의 깊이이기도 하다. 나는 마침내 되찾은 이 깊이를 결코 잃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