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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PART 9. 21-20-31

by GIMIN

이 앨범 수록곡의 제목을 이으면 문장이 된다는 콘셉트를 지녔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후반부의 곡은 「BARCOOL이란 CAFE에서」나 「무제」, 「반복」, 「짜증스러워」의 ‘인트로’ 같은 여러 스킷(Skit)에 의해 자꾸 문장이 끊긴다.


이 앨범의 (특히 앨범 전반부의) 사치스러운 사운드는 이들이 목격한 당대의 ‘현실’을 충실히 음악으로 체화한 결과였다. (이정식이 색소폰 연주로 참여한) 「오늘 나는」서부터 이 앨범은 어느 ‘플레이보이’의 하루를 추적한다. (물론 마크 코브린[Mark Cobrin]이 레코딩과 믹싱을 담당하고, 뉴욕의 앱솔루트 오디오[Absolute Audio]란 회사에서 톰 브릭[Tom Brick]이 마스터링을 담당했기에 이뤄질 수 있었던 사운드였지만,) 박현준의 리듬 기타 연주, 강기영의 베이스 연주, 김민기의 드럼 연주는 이 곡을 비롯한 앨범 전반부의 곡에 선명한 리드미컬함을 제대로 부여했다. (「그녀의 모습을」을 연주하는 강기영의 베이스 연주는 왜 그가 당대의 베이시스트인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키보드를 맡은 한석호와, 김원용(색소폰)과 신영환(트럼펫), 에릭 H. 버거(Eric. H Burger, 트롬본)가 함께 한 이 앨범의 혼 섹션 세션들 또한 이 곡을 비롯한 이 앨범 전반부의 곡들에서 그야말로 맹활약했다.


‘플레이보이’의 이야기는 기실 「사랑해」의 사운드가 LP 특유의 ‘노이즈’를 입은 시점에서 갇힌 텍스트로 끝났다. 「BARCOOL이란 CAFE에서」의 ‘잡담’ 이후 이 앨범의 모든 소리는 급작스레 바뀐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현악 연주가 들어가 더욱 애절한) 「많은 이별들은」을 노래하는 김원준의 보컬은 처절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바로 다음 곡인 「짜증스러워」는 냉소어린 표현과 밴드 멤버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메타 서술이 한꺼번에 들린다. 머뭇대는 사람의 냉소 어린 ‘현실’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이 대목을 더욱 강조하겠다는 듯, 이 곡은 충실한 록 밴드 사운드와 (보컬과 멈블을 오가는) 김원준의 짙은 목소리로 가득하다.


박현준이 작곡하고 김원준이 가사를 쓴 「방황의 모습은」과 강기영이 만든 「나를 돌아보게 해」는 마침내 드러난 ‘방황’을 일상적인 풍경 속에 담은 (연속적인) 긴 걸개그림이었다. 「방황의 모습은」의 거친 방황이 (혼 섹션 연주가 들리는) 「나를 돌아보게 해」의 (도회적인 뉘앙스가 깃든) 파랗게 물든 방황으로 슬며시 넘어가는 동안 김원준의 목소리는 (방황을 애써 억누르는) 먹먹한 슬픔을 진하게 드러냈다. (때문에 이들이 표현한 ‘현실’ 또한 아연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비범한 비감(悲感) 또한 다음 곡인 연주곡 「반복」의 루프가 잘근잘근 짓이긴다. 「끝」에 이르러 괜찮다고 노래하는 박현준의 목소리엔 지친 체념만이 깃든 듯이 들린다.


‘우리는 결국 모두 방황한다’는 사실을 도시의 하루로 서사화한 이 앨범은 도회적인 감각으로 도시의 공동(空洞)을 선명히 포착했다. ‘안개도시’에 겨우 착륙한 이들 또한 결국 화려한 불빛에 눈이 멀었다. 가벼운 일상을 거듭하는 일에 완전히 순응하고 욕망의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만 가득한 시대에 들어서며, 앨범의 전반부를 화려하게 수놓은 ‘착각’은 이제 확실히 우리 주변의 감각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나를 돌아보게 해」의 사유를 곱씹는 대신, 그냥 처음의 ‘착각’을 계속 탐닉한다. 되지도 않는 몽니를 부리고, 끊임없이 권태로워하면서, ‘반복’이 주는 안정감에만 매달리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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