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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의 딜레마

8월 20일

by GIMIN

글 하나를 썼다가 엎었다. 시를 넣을 생각이었는데, 나와 같이 배우던 친구의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시집 사면 시집 쓴 시인에게 인세가 안 들어간대.” 사실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은 말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한참 고민했다. 오래전, 강의실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시를 인용하는 블로그가 너무 많다면서 시인인 그는 조교가 건네준 커피를 홀짝였다. 시집을 다섯 권이나 낸 시인이었다.


물론 ‘인용’은 잘만 쓰면 훌륭한 기법이다. 내가 미처 표현하고 있던 것들을 적확하게 하는 문장을 발견하면, 혹은 내 직관이 틀린 이야기를 할지 못할지 고민할 때마다 인용문은 내 믿음과 감각에 대하여 적지 않은 피드백을 해준다. 틀린 의견을 수정할 때, 왜 틀렸는지를 복기할 때 얻는 사유가 맞는 의견을 확실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득을 얻을 때도 많다. 나의 감각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이 결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의식 과잉으로 치닫던 문장은 점차 간결함과 안정감을 되찾았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저작권법을 알아야 한다면서 ‘인접권’을 비롯한 권리를 선생님에게 배웠을 때, ‘인용’에 대한 내 믿음은 다른 방향에서 오는 의구심의 청문회를 받아야 했다. 나는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해 인용하지만, 실상 내 의견이 탄탄하지 않다는 것을 눙치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에도 암묵적 동의를 내린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내가 쓰는 ‘인용’을 점검했다. 행여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내 식으로 단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바꾸는 식으로 대체했으며, 떠도는 문구들은 정말 그 텍스트에 그 문장이 있는지 사방으로 알아봤다. (아주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하나의 문장을 확인하러 국회 도서관에 있는 박사 논문을 뒤지는 때도 있었다.


인용을 하던 습관을 버리면서 나는 내 글에 있던 안이함을 좀 더 살필 수 있었다. 좋은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도 넘어갈 수 없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생각과 구상을 가다듬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그 사이에도 좋은 인용을 찾아서 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교정을 하고 있는 내게 있어서 좋은 인용문은 반박을 위한 ‘인용’이다. 인용문에 얽힌 (글의 권위든 글을 쓴 사람의 권위든) 권위를 씻어 내리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긴 예전에도 그런 걸 배운 적이 있었지. 타타르키비츠의 『예술개념의 역사』였던가. 거기 나온 테크네(Techne)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서 지금 우리가 말하는 범주의 예술은 그 당시 기술과 구분되지 않았다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문구는 사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는 식으로 번역해야 맞다고. 히포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했던 게 너희들은 의구심이 한 번도 든 적이 없냐고. 나는 그제야 내 집에 잠든 명언 학습만화과 명언에 대한 내 일말의 경외감을 함께 버릴 수 있었다. 양은 냄비를 받치기엔 그만한 사이즈의 책을 찾기 힘들어서 내버려 두었건만.


요즘은 저작권이 만료된 사람의 시와 소설을 원문 표기 그대로 ‘인용’하는 선으로 타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하면 요약하거나, 문장을 고치는 식을 고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기법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언어와 기법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나는 언어와 기법에 끌려가서 스스로를 속이는 글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인용은 욕망이 아니라 당위성이 제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유가 보장되어있지 않은 기법은 결국 허세에 불과한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 잘못이 크다. '인용'도 제대로 못하는 실력으로 '인용'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 않은가. 힙합에서도 샘플링 기법을 예술적으로 활용한『Paul's boutique』같은 작품도 있는데. (물론 이 앨범을 비롯한 여러 앨범들은 '샘플 클리어'라는 과정 즉, 원작자의 허가와 합의로 이뤄진 과정을 거쳤다.)


잘못의 무게와 잘못의 책임을 다스리는 참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내 죽비 소리는 김은국이 자신의 소설『순교자』서두에 붙은 감사의 말이다. 그는 인용문에 있는 카뮈의 문장 앞에 카뮈의 문장을 출판에 사용하게끔 허락해 준 출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했다. 나는 그 사려 깊은 문장으로 이뤄진 인사에서 인간의 위대한 겸손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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