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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Jul 17. 2024

이스터 에그

7월 17일

 

  나는 모든 작가의 마음속에 단어사전이 하나씩 있다고 믿는 편이다. 믿는 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언어의 빈곤’이 주는 '창조'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를 흉내 내는 나는 그저 많은 도구를 필요로 하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 계란이 아까워도 나한텐 닭이 먼저다.

      

  어떤 단어는 용례에 동영상으로 남아있고, 어떤 단어는 그저 정의가 글로 박혀있으며, 어떤 단어는 글자 옆에 찍힌 감정이 먼저 눈에 들었다. 어떤 단어는 랑그와 파롤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번개가 적혀있다.      


  내 사전에 ‘간절’이라는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예시가 적혀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동영상에 데려다주는 경우가 많다. 작년 겨울부터 나는 대학가요제를 자주 봤다.      


  처음에는「탈춤」만 보려고 하는데, 알고리즘은 그걸 알고 얼른 내 품에 동영상 한 다발을 안겨주었다.「꿈의 대화」,「해야」,「연극이 끝난 후」,「껍질을 깨고」,「꿈속에서」,「잘 부탁드립니다」,「바다에 누워」등등.    

 

  1988년 대학가요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무한궤도 또한 그들 틈 사이에서도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잃지 않았다. 당시에 이 곡을 직접 들었던 사람은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며 보던 것도 잠시,     

 

  같은 데를 보더라도 딴 곳을 보는 나는 그이가 잡은 마이크를 유심히 봤다.  

    

  그이가 손을 놓을 때마다 마이크는 축축 쳐지고 있었다. 한 번만 그랬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사이에도 마이크는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그이는 때로 그 상태의 마이크를 손으로 추켜올리면서, 때로 자신의 두 다리를 쭈그려가면서 열창을 했던 것이다.     


  그이의 풋풋한 열창이 실은 이런 간절함의 발로였다고 생각하니, 새삼 예전에 본 그이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집안의 반대로 이불을 덮은 채, 아코디언으로「그대에게」를 작곡할 수밖에 없었던 그이. 리허설 당시에 요즘은 멸종된 플로피 디스크가 인식이 안되어 원하는 음을 들려주던 신시사이저가 고장 나서 애를 먹었다는 그이.


  ‘내 마음 큰 사전’의 편찬위원과 편찬위원장을 동시에 맡은 나는 만장일치로 '간절하다'라고 하는 단어 옆에 이 용례를 적어 넣기로 결의했다. 아주 작은 글씨로 깨알 같이. 그러나 확실하게 적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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