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나는 아직도 찬물에 면을 씻을 때 생각보다 박박 씻어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면을 악력으로 짓이기는 행위를 면을 박박 씻는다는 행위와 구분할 수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삶은 면에 남은 전분기를 씻기 위해선 마치 손빨래로 셔츠를 구겨가며 때를 빼듯이 면과 면을 잡고 박박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대에서 대용량으로 냉면을 만들 일이 있었다. 훈련으로 인해 냉면 500인분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육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놨지만, 나는 면 포장 상태를 보고 절망했다. 냉면 면이 마치 가지런한 뭉터기처럼 붙어있는 제품이 내 앞에 있었다. 정말이지 그걸 일일이 비벼가면서 풀어헤쳤고, 돌아오는 그날까지 내 손에 묻은 메밀 냄새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조리 특성상 손을 많이 씻는 일이 잦음에도 그랬다.
여름에 콩국물을 동네 시장 방앗간에서 사고 소면을 삶았다. 삶을 때 이는 거품을 다스리기 위해(그리고 면을 더 쫄깃하게 하기 위해) 찬물을 넣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한 나는 그대로 넘쳐나는 거품을 막지 못했다. 가스레인지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뭉게뭉게 핀 김이 사방으로 퍼지고 나는 줄줄 흐르는 땀도 닦지 못하고 얼른 가스레인지를 닦았다.
겨울에 냉면과 비빔면을 산 적이 있다. 수돗물조차도 차가워서 그런지 면을 비빌 때마다 더욱 쫄깃해졌다. 한동안 그 걸로 삼시 세끼를 해결한 적도 있었다. 어찌나 인상적인지 파스타를 찬물에 씻는 실수도 저질렀다. 실수를 깨닫고 멈춘 손을 놓았을 때는 이미 면은 온기를 잃은 싸늘한 몸으로 채에 남겨졌다. 그나마 팬에 데워놓은 소스가 그 체온을 살려줬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나는 그저 두텁고 차가운 파스타를 먹을 뻔했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안 하다고 하지만, 때로는 겪어봐야 터득하는 의미를 잘 이해하는 듯도 하다. 실수의 기억은 치욕에 닿지 않는 한, 모두 추억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몸으로 터득하는 일은 오래 잊지 못한다는 의미도 이제는 잘 이해한다.
비빔면을 채에 담그는데 비빔면 뭉치가 채를 벗어나 통째로 하수구에 들어갔다. 다른 면 또한 그에 딸려 들어갔다. 손에 든 냄비가 뜨겁다는 생각도 잠시 사라질 정도로 당황했다. 아휴. 난 아직 멀었다. 멀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