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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타리움(Planetarium)

by GIMIN

카시오페이아 자리와 북두칠성을 처음 헤아렸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 가을바람이 점점 날이 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대부도의 들판에서 피운 불이 잦아들고 선배들과 후배들이 저마다 술을 마시거나 자거나 대화를 하기 위해 펜션 다락방으로 화장실로, 부엌으로, 방으로 몰려갈 때 나는 섬 너머까지 밝은 오렌지 불빛 사이로 간신히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본 하늘과 들판은 너무나 넓어서 어느새 마을이며, 불빛, 나무며 숯 사이로 붉게 물든 불씨를 저 멀리 밀어젖히고, 오직 나와 밤하늘과 지평선만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약간의 취기가 머릿속의 리모델링을 도왔다. 나는 언젠가 그림책에서만 봤던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체크해 가며 봤다. 카시오페이아 옆에 있는 북두칠성을 내 손가락으로 짚었을 때, 손가락 끝에 밀려온 찬바람이 몸속을 통과하는 번개가 되어 내 몸을 다녀갔다. 나는 동이 틀 무렵까지 점퍼 소매 안에 손을 감춘 채로 하늘을 바라봤다.

군대 훈련소에서 야간 훈련을 나갔을 때, 숙영을 했던 나는 하루종일 땅을 기었다. 조교는 모든 라이트를 끈 채로 암순응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들고 있는 총의 쇳내와 가을 풀의 풋내가 흙냄새의 텁텁함과 얽히는 게 왠지 모르게 지겹고 답답했다. 안 그래도 지겨운 마음이 자꾸만 다른 곳을 보라고, 다른 일을 하라고 유혹했다. 무거운 철모의 무게를 감내하면서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지상에 있는 모든 사물이 실루엣처럼 어두울 때, 아직 푸른빛이 일렁이는 밤하늘 사이로 무수히 많은 별이 보였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에 공감하지는 못했으나, 그토록 많은 별이 밤하늘에 숨겨져 있다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기에,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입술로만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이 별 저 별을 헤아렸다. 더블유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를 알아보고, 그 옆에 있는 북두칠성이 철모 끝에 보였을 때, 나는 문득 지긋지긋한 훈련에서 벗어나 밤하늘로 올라간 사람 마냥 가슴께가 시원했다. 위로 솟구치는 마음을 잠시 가누기 위해 군화가 흙을 짓이기는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던 날, 도시가 그물 친 오렌지 빛 거미줄을 빠져나온 비행기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섰다. 창 밖에 보이는 것이라곤 어둠이나 불 밝힌 배와 배의 불빛이 이따금 비추는 물결 밖에 없었다. 간신히 구름과 아직 저물지 않은 햇빛을 알아보았지만, 이 또한 드물었다. 창은 실루엣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내 얼굴과 핸드폰을 비췄다. 밤이 되면 나는 다시 서울에 있을 테고, 버스를 탄 채로 집으로 향하리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을 알아봤을 때 나는 처음에 그게 전투기나 다른 비행기의 불빛인 줄 알았다.


그 빛은 유달리 반짝거리지도 않았고, 제자리에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군대에서 봤던 별과 MT에서 봤던 별을 그 불빛에 대보았다. 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긴 한숨을 쉬고 싶었다. 그러나 피로가 내 입을 잠갔다. 내가 본 별은 그때 내가 본 별과 같은 별일까. 우리가 보는 별은 그 별의 과거라던데, 내가 보는 별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염려가 일 즈음에 기내식이 나왔다. 더운밥을 먹는 내내 별이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여서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다시 창 밖을 봤다. 내가 보던 별이 어디 있는지 헤아릴 수 없었다. 잠시 슬펐지만, 그래도 그 별을 보고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 내가 있었다. 그 별이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별인지 아님 북두칠성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별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여러 방향에서 본 별이 하나둘 집적되어 마음속이 뭔가 움찔거렸다. 나는 내 체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듯이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미 거기 있었다. 내가 별을 본 기억이 기어이 별이 되어 머리 안의 원형 극장 천장에 지울 수 없는 빛을 벽화처럼 남겼다.(20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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