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캐리어를 잠근 자물쇠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필 첫날부터 이러다니. 어머니는 자물쇠를 풀기 위해 이리저리 살폈다. 공항 안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해서 약간 더웠다. 나중에 짐을 풀기로 하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버스가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그리 덥지 않았다.
버스가 본격적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탔다. 옆을 바라보니 항만 시설이나, 중화학 공장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산화철 특유의 검붉은 색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공장이든, 어느 집이든 항구에는 녹이 많았다. 우리 같으면 바로 새로 칠할 녹도 거기선 당당하게 항구의 일원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베는 딱 우리네 인천과 모습이 비슷했다. 낮은 건물들. 중화학 공장들. 기차 노선과 고가도로가 교차되는 공간. 자세히 보면 거기에도 녹이 있었다. 간판에 달린 철제 슬레이트에도, 경고판 테두리에도, 난간에도, 부채 공장에도 녹은 언제나 따라왔다.
어머니 가방은 호텔에 들어가고 나서야 풀렸다. 삐걱대는 소리가 어쩐지 귀에 가득 찼다.
난바 역에서 걸어 나와 애니메이트로 걸어가는 길에 낡은 헌책방을 보았다. 타워레코드에서 나와 난카이 난바 역 쪽으로 걸어갔다. 새하얀 페인트가 녹을 겨우겨우 가렸다.
옆에 맨 가방에는 시디가 들어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 플립퍼스 기타, 피시만즈, 게스노키와오토메, 마일즈 데이비스, 척 베리, 그리고 캐롤 킹.
헌책방 옆에는 남코 게임센터가 있었다. 전자음 특유의 뿅뿅거리는 소리가 여름 습기와 어우러져 더운 공기에 가벼운 숨을 불어넣었다.
애니메이트 매장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는데 올라가는 내내 삐걱거렸다. 여름이라서 기름칠이 덜 되었을까. 붓펜과 일체형 잉크 펜을 샀다. 노트를 사려고 했다가 엽서를 샀다. 중고 DVD 서가가 있는 곳에 강렬한 햇빛이 머물다 지나갔다. 구름이 제법 짙은 손으로 햇빛을 간신히 가려줬다.
돌아오는 길에 게임 팩을 파는 상점에도 들어가 보았다. 어릴 때 들었던 “세가”라는 음성이 생각났다. 다시 그 헌책방 곁을 지나니 닫힌 문 앞에 고양이가 한 마리 주저앉았다. 여기 고양이는 얼굴이 갸름하다고 생각하며 고양이를 계속 쳐다보니, 고양이는 그런 내 시선을 피한 채,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했다.
버스 안에서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햇빛이 강렬하게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집들이 양철판으로 뒤덮여있었고, 전부 녹이 슬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폐가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외려 멀쩡한 콘크리트 건물 옆에 그런 건물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공항 가는 길에 잠시 면세점에 들렀다. 면세점이라고 해보았자, 가이드와 미리 협의가 된 강매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구경하고 나왔다. 길 건너편에 녹슨 지붕을 한 집이 보였다. 때마침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 그때 쇠비린내를 맡았다. 어머니에겐 말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찍었다.
바로 옆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서 야끼소바빵을 씹으며 나는 쇠비린내를 생각했다. 양배추 특유의 단맛이 마요네즈의 느끼한 맛과 어울리고 있었다. 코끝에 와사비 아린 맛이 올라왔다.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이사를 했을 때,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발견했다. 사진 속의 나는 바다 옆에서 따가운 햇살에 눈살을 찌푸려가며 웃었다. 사진을 본 나는 바닷바람 속에서, 건물 옆에서, 그리고 지붕 위에서 뚜렷하게 맡았던 쇠비린내를 곧장 떠올렸다.(202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