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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도 노을이 진다면

by GIMIN

투명한 비닐 속에 금붕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넋 놓고 봤다. 금붕어 꼬리는 너무 투명해서 어디서 물이 끝나고 꼬리가 시작되는 지를 짐작하지 못했다. 오후의 햇살이 산소공급기가 내뿜는 산소방울 사이로 자글자글 구슬처럼 빛났다 사라졌다. 물고기 옆에서는 꽃집이 있었는데, 라일락 향기가 짙을 때면 거기서 잠시 멈춰서 꽃향기를 맡았다. 알러지성 비염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책가방을 던지고 다시 나올 때마다 수족관 옆에 있는 상점 안에 들어갔다. 내 키보다 높은 냉동고 문을 힘겹게 열며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을지, 아니면 저 멀리 있는 분식집에서 하얀색 점이 박힌 초록색 접시 위에 있는 떡볶이를 사 먹을지 고민하는 동안, 문방구에서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교회 모형을 들고 나온 남자아이를 보았다.


나는 문방구로 갔지만, 마침 재고가 다 떨어졌다. 나중에 그 모형을 샀을 때, 나는 모형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흥미가 채 하루를 못 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은 세상에 놀면서 보고 듣고 할 물건이 많았다는 게 정확할 하리라. 어린 내게 하루는 길었다. 내가 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공부를 할라치면 왜 하루는 더 늘어났는지. 볕뉘가 누렇게 물들 때마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운동화 앞축으로 흙이 있는 땅을 괜스레 찼다.


이따금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옆집에 불쑥 들어가서 그 집 아줌마가 해놓은 간식을 먹으며, 그 집 아들과 같이 알에서 나온 오리가 자라는 비디오를 함께 봤다. 이사를 온 옆집이 귤을 건네주면, 파전을 만들어서 들려 보내주는 인심이 아직은 복도식 아파트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자주 자전거를 탄 형을 따라 자주 공원에 놀러 갔다. 태권도 도장에서 알고 지내던 형이었다. 놀러 갔다고 해서 별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형의 자전거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킥보드를 탄 채로 나갔다 오기만 했다.


몇 달 전에 우연히 내가 살던 곳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나는 핑계 삼아 잠시 그곳을 들렀다. 수족관은 그대로 있었다. 햇빛이 마침 낡은 상가의 뒤편에서 비췄고, 거품에 맺힌 햇살이 펑펑 터졌다.


나는 잠시 뒤돌아봤다.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내 앞에 있는 차로에 누군가를 태운 스포츠카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미처 다 살피지 못한 나는 스포츠카가 피우는 매연에 잠시 기침했다. 시끄러운 음악도 틀었는지, 음악 소리가 스쳐 지나간 주위는 갑자기 고요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작스럽게, 드라마틱하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상가를 봤다. 상가는 예전보다 좁은 어깨를 드러내며 그늘진 얼굴을 드러냈다.


꿈에서 나는 어린애였다. 나는 조막만 한 손으로 강물에 종이배를 띄웠다. 나는 내 작은 다리로 종이배를 보기 위해 열심히 종이배가 강물에 흐르는 모습을 좇았다. 그러나 강물에 일렁이는 윤슬 밖에 볼 수 없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얼굴 한가운데로 모인 열기와 축축하니 시원한 눈시울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꿈에서 지었던 그 표정을 지금의 이 얼굴에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주름살이 늘고 피부도 거칠지만, 그때 지은 표정 사이로 쑤욱 올라오던 열기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으니까.(202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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