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옆의 보행로를 걷던 중에 울고 싶었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 버스를 탔는데 카드를 잊었다. 지갑엔 2,000원만 있었다. 나는 등에 맨 백팩을 벗었다. 지퍼가 잘 안 열렸다. 등에 다시 매려고 했는데, 잘 안 매진 채로 모래 섞인 바닥에 처박혔다. 비에 젖은 모래가 백팩 밑부분에 묻었다.
백팩 밑부분을 털다가 눈가가 축축한 걸 느꼈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잔뜩 들러붙어서 사람 몸을 놓지 않는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몇 대의 버스를 보낸 채 멀거니 어느 중학교 정문만 봤다.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의자는 그 슬픔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자리에 있는 듯싶었다. 나는 기어이 거기까지 걸어가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을까. 전생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내가 이렇게 굼뜬 사람으로 태어난 걸까. 이력서 앞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며 이게 맞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도 힘든데 앞으로 얼마나 힘든 일이 있으려고 이러나.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스듬히 내리다가 어느새 그치고 잠시 햇살이 들다가 했다. 와이셔츠를 들러붙게 만든 땀이 온몸을 춥게 했다.
사소한 비참도 개인에겐 쐐기가 될 수 있다. 이럴 때면 나는 절망하는 사람과 기뻐하는 사람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사람은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슬픔은 차이가 없었다. 내가 슬픈 점을 사람들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성복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예전엔 위로의 손길을 보듬어주고 감싸 안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끝에 있는 의자에 앉은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지나쳐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나, 버스가 오는지 보려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누가 내 옆에서 괜찮냐고 물었으면 도리어 더 슬펐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탈진한 나는 다시 역까지 걸어갔다. 집 근처 역까지 가는 지하철에 오르면서, 집이 거기까지 가는 열차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까무룩 잠들고 싶었다. 어깨를 타고 오르는 열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 삐걱대는 관절이 잠이란 개구리에게 나뭇가지를 든 어린이처럼 콕콕 찔렀다.
대문을 열자마자 옷을 벗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속옷 바람이 된 나는 얼른 씻고 싶었지만, 몸에 무리가 올지도 모른다는 ‘아르바이트’ 시절의 경험이 나를 간신히 말렸다. 의자에 앉아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대로 까무룩 잠들고 싶었다. 자리끼를 찾는 마음으로 자장가를 찾고 싶었다. 수분도 노래도 나올 수 없는 몸이 차가운 식탁에 물컹거렸다.
씻은 다음에 잠들었다. 일어나니 자정이었다. 어제를 떠나보냈지만 어쩐지 한 세월을 떠나보낸 거 같아서 아쉬우면서도 속이 시원했다. 나는 또 쓸데없이 비참했었구나. 지나면 다 괜찮은데 또 비참에게 속았구나. 물론 마냥 후회에 몸을 담그기엔 어제의 내 마음 또한 진심이었음을 잘 안다. 저마다의 고통은 도저히 비교할 수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안다. 비참에 담담해지는 날이 과연 내게 오기나 할까.
생각과 같이 이불을 뒤척거렸다. 입으로 내지 않고 속으로 부른 자장가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려고 눈을 감았다. 일어날 수 있는 실수와 그에 따른 후회에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떠오르는 햇빛을 두 손안에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이마에 따듯한 손을 올린다. 아...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