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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Jan 02. 2023

작업노트

무엇을 그릴까, 아니면 만들지도.

샤워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예전에 내가 작품을 만들던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 글을 적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무엇에 대한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꿈에서는 수영장에를 갔는데, 처음에는 평영이 잘 되지 않다가 다시 했을 때 너무나 잘 헤엄쳤다. 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파란빛 수영장과 살을 감싸는 물의 촉감이 너무 기분 좋아서 나는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꼭 영원히 수영을 할 거야라고 다짐했다. 꿈에서 깬 건 진동을 듣고 나서였다. 중간에 깨었더라도 달콤한 꿈이었다. 다시 꾸고 싶은 꿈, 시원하게 앞으로 유영하는 기분.


다시 작업 얘기로 돌아오자. 나는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 걸까? 나의 경험(생각, 감정, 행동) 중에 내가 억압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꺼내어 다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면서 시간적으로 가까운 것에는 보람언니가 며칠 전 선물해 준 파쉬 보온 주머니가 있다. 주머니에는 보라색 커버가 씌워져 있다. 뜨거운 물을 담아 넣으면 보라색 겉옷을 입은 물주머니가 따뜻해진다. 자연스레 주름이 접혀서 진짜 옷을 입은 인형처럼 품에 쏙 들어온다. 이것은 원래 공장에서 만들어진 다소 커다란 실리콘 주머니지만 보라색 점퍼를 입음으로써 포근해 보인다. 겨울의 침대 위에서 두꺼운 이불과도 잘 어우러진다. 여기엔 온기가 담겨 있어서 나의 배와 등과 이불속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차디찬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따뜻한 생명체 같다. 인간과 진심으로 우정을 나눌 줄 아는 차가운 실리콘 로봇 같다. 보라색이라는 색깔의 이름은 보람언니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언니는 일부러 이 색깔의 커버를 함께 선물해 주었을까? 물주머니가 보라색 옷을 입었기에 그 색깔의 이름과 비슷한 보람언니를 더 잘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언니도 보라색을 좋아하는 걸까. 이 물주머니를 보면 언니가 나를 생각해준 마음이 느껴진다. 그 마음은 따뜻한 물의 온기와도 통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주머니는 나에게 단 며칠 만에 특별해진다. 부지런히 포트에 물을 끓이고, 물을 채워 넣고, 물이 식으면 다시 새 물을 끓여 물주머니에 채우는 것을 반복한다. 이 특별한 물주머니는 나에게 와서 내가 그리고 싶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나는 이 물주머니를 그릴 것이다.


샤워를 하면서 그전에 떠올려 둔 무화과 그리기 시리즈를 다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과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내가 맡은 달은 5월이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무화과를 떠올렸지만 처음엔 5월이 무화과의 수확철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내가 작년에 가을의 무화과를 맛보기 위해 봄에 어린 무화과나무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화과나무의 삶은 봄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무화과나무를 그리기로 한다. 무화과나무를 실물로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를 직접 보고 스케치해놓은 것은 없다. 단지 인터넷 오픈마켓과 고양시의 화훼단지에 가서 무화과나무를 구경해본 기억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핀터레스트나 구글에서 이미지를 찾아봐야지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엄연히 따지면 지적재산권에는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작업을 하는 나에겐 오롯이 내 것이 아니라는 찜찜함을 남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것은 내겐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무화과나무와 내가 보는 무화과나무들을 모두 조합해보기로 한다. 나는 빛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중심이 되는 나뭇가지와 여린 이파리에 빛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한다면 자연의 선물인 햇살을 받은 무화과나무의 생명력이 더 살아나 보일 것만 같다. 나는 그림에 생기를 더하고 싶어 한다. 누가 보아도 무화과나무인 것을 알 수 있게끔 추상적이지 않은 객관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동시에 내가 무화과나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 지점이 나에겐 어렵다. 나는 감정을 잘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아채지 못하고 외면해온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행동을 탓하는 건 늦은 일이다. 나는 샤워를 하면서 5월의 무화과나무에 대한 나의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기다림이기도 하다. 나는 무화과 잎이 점점 자라고 무화과 열매가 맺혀서 연두색이었던 과실이 마치 멍든 것처럼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만족하고 싶었지만 나의 공간에서는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갖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그리워했고, 있지도 않은 무화과 열매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올 해는 어쩌면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새로운 터전에는 바람이 들고 햇빛이 쬐는 공간이 생겼고 흙을 담은 작은 화분도 그곳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작은 희망이 마음에 번지는 것은 나름의 큰 기쁨이다. 무화과는 단단하게 태어나 붉은 물이 들어 피가 맺히듯 고통을 겪고 마침내 보라색으로 익어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느 시를 통해 알았다. 그 시인도 무화과에게서 아픔과 성장을 보았던 걸까. 무화과의 진한 보랏빛은 왠지 우아하다. 상처와 고통을 겪어낸 열매의 색채. 내가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무화과열매의 색과 이 보라색 파쉬 물주머니는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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