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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Jan 12. 2023

그림의 참고자료,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할까?

레퍼런스를 제대로 이용하는 법을 여전히 탐구중입니다

나와 아이들의 공간인 학원을 오픈하기 전까진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실 테이블을 작업 공간으로도 같이 써야 해서 그리고 치우고 먹고 그리고 치우고 먹고 해야 하는 불편함은 좀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그림시간. 저번 주에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 스케치 하나를 완성했다.

'산 다미아노의 버스정류장' 두성종이에 수채과슈, 2023


그림의 주제를 고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내가 본 것과 관찰한 것을 주로 그리는데 그러자면 늘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나 내 경험이 오롯이 주제로 선정되는 걸 원한다.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고 그리면 가장 좋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상 허락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 빨리 지나쳐가야 하는 길목이나

-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나 좋자고 우두커니 스케치하고 있을 순 없기에)

- 그리고 예전보다 더 소심해져서 남 시선 의식할 때. 어릴 땐 오히려 안 그랬는데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혼자 드로잉북 펼치고 그림 그리는 건 집중이 잘 안 된다. 대신 조용한 공원이나 카페 같은 데선 자유롭게 그리는 편이다.

-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역사 속 이야길 그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2천 년 전으로 과거로 가서 사진을 찍어올 수도 없고 수많은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과 그것들을 조합해서 내가 새로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 제일 어렵다. 고증에 대한 강박도 있다. 좀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서 보통은 일상 속에서 앗 이건 안 놓칠래 하는 장면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놓고 폰을 보고 그리거나

컴퓨터 ‘그림자료’ 폴더 속에 모아 보관해두기도 하고

그중에 어떤 것들은 골라서 찍스에서 인화해보기도 했다


인화를 한 이유

핸드폰 속의 사진을 보고 그리려다 보니 자꾸 화면 잠금으로 인해 꺼지고 그림 그릴 때마다 매번 설정> 화면 잠금 해제 해놓는 게 귀찮다. 인화를 해보니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의 윤이 빤짝빤짝 나는 고화질 사진을 보면 에이포용지에 컬러프린트 했을 때 보다 화소가 깨지는 문제도 적고, 빳빳한 인화지다 보니 구겨질 일도 거의 없어서 따로 파일이나 앨범에 껴놓지도 않았는데도 2년 전쯤 인화해 둔 사진자료 뭉텅이가 아직까지 멀쩡하다. 그렇다고 매번 인화를 하는 건 아니다.. 인화도 50장 정도를 한번 해보고서 그 이후로는 아직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짐을 늘리는 일이기도 하고 인화를 넘 많이 해놓으면 부담돼서 다 그리지도 못한다.


아씨시 여행 중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눈 앞의 풍경이 아름다워 담아왔다. 짤막한 여행기를 그림과 함께 쌓아가고 싶다.


작년 이탈리아 여행의 풍경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비교적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단기 여행기간 동안 내가 맘에 드는 장소들에 우두커니 서서 스케치를 할 수도 없고 특히 미술관 같은 데서도 작품 모작이나 조각상 드로잉도 해보고 싶었지만 투어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했으므로 그것도 불가능해서 사진으로라도 남겨왔다. 이럴 땐 현지에 거주하는 장기 여행자들이나 유학생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때 찍은 여행 사진들 중에 그림으로 그릴 것들을 추려서 따로 분류했다. 사진 선정 기준은 내 마음이 끌리는 장면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기차 안에서 풍경을 찍을 때나 어디서든 내가 찍고 싶은 풍경들을 찍을 때 찰칵! 소리가 안 나는 게 넘 x10000 편했다… 인천공항 오자마자 뭐 찍으려고 하기만 하면 찰칵 찰칵 소리에 괜히 주변 민망해서 스피커를 엄지로 가려보며 아 나 한국 도착했네 실감했던 순간들.. 얄짤없이 큰 핸드폰 카메라 셔터소리와 이게 법으로 정해질 만한 이유가 넘 화가 나!! 암튼 다시 와서는 확실히 그리고 싶은 것들을 촬영할 때 소심해졌다. 뜬금없는 데 꽂힐 때가 많아서 더욱.


이번엔 컴퓨터 속의 여행 사진을 노트북 모니터에 띄워 참고하며 그렸다. 역시 인쇄나 인화를 안 하니까 노트북도 중간중간 절전모드로 바뀌어 화면이 꺼지는 것이 살짝 불편했다.


실물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면 다른 분들은 어떤 식으로 그림자료, 레퍼런스를 띄워두고 그리실까?

앞으로 그리고픈 여행 풍경들이 아직 많은데 좀 더 괜찮은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아이패드에 띄워놓고 화면잠금을 해제하고 그리면 편할까?


+

그리고 나도 때로는 구상이 아닌 추상도 도전해보고 싶지만 형태감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그림은 내 것이 아닌 거 같단 생각이 든다. 굳이 억지로 해야 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기분도 환기할 겸 시도는 가끔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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