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술학원

by Angie

편도 90분이 걸리는 직장을 오가며 그림 작가를 꿈꾸는 건 어쩌면 가장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때의 꿈은 화가였다. 화가는 그림 그리는 사람. 대학에 들어 가니 교수님들은 화가라는 말 대신 작가라는 말로 불리웠다. 나도 교수님들처럼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언젠가는? 모든 강사들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내가 꿈꿔온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나도 그분들처럼 언젠가는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는, 세상에 어떤 말을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말의 모양이 그림인 사람들.


무언가를 말 하기 위해선 애정이 필요하다. 애정은 곧 마음. 세상에 지쳐 그 마음을 져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내가 하는 말로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싶은 마음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궁리하는 것은 작가의 공부. 삶에서 지나칠만한 것들도 그들의 시각으로 한번 더 거쳐 생각하고 흡수한다. 세상과 사람에 질리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간절히 꿈꾼다면 그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져버리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희망을 잃은 시든 풀 같았다. 아무 것에도 관심 갖고 싶지 않는 무기력한 시간에 오랜 시간 압도되어 있었다. 먼 훗날의 모든 열정까지도 모두 끌어다 쓴 사람처럼, 기운을 소진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금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할까? 꿈 하나를 목표로 삼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루어질 거라 믿으며 보낸 이십 대. 그 시간이 다 지나갔고, 삼십대도 중반을 지나간다. 그간 단 한번도 생계를 위한 일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런 와중에 작가를 꿈꿨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


회사에 다니며 디자인 업무를 할 때엔 퇴근 후에 가끔 가곤 하는 공동 작업실을 구해 두기도 했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저녁 시간이 아무리 존재한다 해도 내 몸안의 기력이 회사에서 모두 소진되어 남아있지 않으면 그림에 대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퇴근 후 저녁 시간, 머릿 속은 안개 처럼 뿌옇고 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허기진 배를 채울 저녁식사 뿐이다. 그 순간의 내가 미워졌다. 나는 퇴근 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왜 육체의 배고픔은 갈급해 하면서 그토록 오래 꿈꾸던 작가를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 거냐고.


억지로 몸을 이끌어 지친 몸과 머리로 작업실에 앉으면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왠지 하나같이 쓰레기 같기만 하다. 딱딱한 서류뭉치들과 사무용 프린터와 분명히 꿉꿉할 회사 바닥의 카펫이 눈에 어른거리지 않았음 싶은데, 떠오르는 것들은 온통 그런 것들 뿐이다. 점심으로 먹은 구내식당의 식단 혹은 붐비는 회사 근처의 직장인들을 위한 수많은 식당들. 그 속에서 나눈 의미 없는 일상의 대화들. 그런 것들에 둘러 쌓인 나는 왜 퇴근 후에도 그 소음들과 환영 속에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 있을까, 내가 가고 싶던, 내가 마음 속으로 스승으로 여기던 그 수많은 화가들은 분명 내가 자라는 동안 나에게 '넌 화가가 되어야 해' 라고 말해주었던 것도 같은데... 그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나는 지쳐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9시 까지 출근을 하는 일상을 몇일이고 몇달이고 몇년이고 반복했다. 그 속에서 나는 영혼이 부서져갔고 아침의 해도 내 마음 속 모두를 온전히 비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볼까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매일 세상에 졌던 것이다.


나는 좀 더 그림과 가까운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림을 가르치는 일은 어떨까, 그림과 가장 관련된 일이잖아. 그림을 정말 사랑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를거야. 라는 마음으로 아동 미술학원에 지원하게 된 건 정말 나중의 일이었다. 아동미술학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이 될 수 있어야 했지만 다른 그 어떤 직장보다도 적었던 평균 임금 덕에 월셋집에 아닌 전세집에 살게 되어서야 가능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들어 간 아동미술학원. 서른 초반의 나이는 그렇게 이른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기회였고, 간절했다. 일하는 내내 느꼈다. 이건 내 천직이라고. 낮에는 학원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소소하게나마 작은 그림들도 가끔 그렸다.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에너지가 유지되었다. 아니 때로는 그 힘이 더욱 커진채로 퇴근했다. 그런 경험은 이전의 어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경험한 적 없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하며 그림을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그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실행했다.


아동미술학원으로의 이직 이후 나의 삶은 일, 기록, 작은 그림들로 채워져나갔다.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언젠가 나의 미술학원을 꼭 차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나의 기록을 위한 다이어리와 노트에는 내가 차릴 미술학원에 대한 계획이 빼곡하고 구체적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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