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노트북은 차가워

by Angie

아주 오랜만인 것만 같다.

이곳에서 어떤 일에 열중한 것은.


요즘 내가 주문받은 그 어떤 일은 창작 곡의 배경에 쓰일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며칠간 학원과 집을 오갈 때마다 간간히 그 곡을 들어도 보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는 도저히 그림을 그리기가 어지러워

잠시나마 힘이 남아 있을 때 집에서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보곤 했다

생각하는 대로 잘 나와주지는 않았다


작업실에 오며 생각했다

이곳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날에만 올 수 있겠구나,

출근을 하는 날에는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구나라는 것을.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계획은 알찼다

서울시립 미술 아카이브에 가서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책들도 읽고 아이패드 드로잉도 하고 오기


그런데 몸은 따라주질 않았다

조금의 책만 뒤적거리다가

세마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한숨 누워 쉬고 작업실에 나오며

조금 후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기분으로

온전히 작업실에서의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깨달았다


5월부터는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가까운 작업실에 오거나

걷고 싶던 경복궁의 거릴 다시 걷거나

이런저런 서울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책도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아무튼 오늘도, 깨달았다

종이에 수성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그 따뜻함을,

작업실에서 잠들어 있던 노트북을 열고

차가운 자판 위에 팔을 올릴 때 느낀 한기에 놀라기 전까지는 몰랐던 그 온기를

매일 조금 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소망이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일기장을 아직 정하지 못한 것 같다

어딘가에 이 끊임없는 변명을 늘어놓고는 싶은데

정착할 곳은 찾기 쉽지 않다.


기록이 가장 오래 간직되는 곳은

의외로 데이터 센터가 아니라 종이 노트라는 걸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나는 표현이 갈급한 나머지

이 차가운 세상에 다급히 변명을 쏟아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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