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던 백과사전과 나

지연이 지우가 되는 이야기 2

by 꿈꾸는 지우



어릴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책은 백과사전이였다. 3살 차이나는 언니와 교육열이 좋으신 엄마 덕분에 난 글자를 더듬 더듬 읽을 수 있을 때부터 백과사전이 집에 잇었다. 책장 맨 아래칸. 내가 꺼내면 양손으로 들어야 낑낑 거리며 옮길 무게였던 엄청 큰 책. 수수하고 재미없던 다른 책에 비해 백과사전은 단단한 겉 표지에 금색으로 글씨가 찍혀 있었다. 쩌적 소리를 내며 열리는 책은 마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열기만 하면 내가 처음 보는 사진들이 군데 군데 숨어있었다. 마치 글자들의 복도 사이를 뒤지다 보면 사진이라는 보물을 찾는 게임 같았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봤던 동물의 왕국에서 봤던 신기한 동물들도, 이름 모를 식물도, 뭔가 되게 멋진 물건들과 건물들까지. 글자의 복도가 너무 길고 거대했지만 어차피 난 보물만 찾으면 되니 사진을 찾아서 휘리릭 넘기곤 했다. 처음엔 사진만 보다가, 사진 아래에 적힌 작은 글씨가 사진에 대한 설명인 것을 알고 그걸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외울 정도로 보고 나니, 그 큰 페이지 어딘가에 더 자세한 설명이 숨어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난 백과사전을 머리속에 차곡 차곡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40대인 엄마에게 꽤 다르게 보였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엄마에게 불을 지핀건 초등학교때 IQ검사가 아니였을까 싶다.

초등학교 1학년때 전국적으로 IQ검사를 했었다. 수업을 빼먹고 뭔가 꽤 많은 문제를 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문제들은 보통의 시험문제와 달랐다. 비교적 쉬웠고, 재미있었다. 도형을 머리속에서 굴려보는 건 그닥 어렵지 않았다. 규칙을 찾아내는것도 쉬웠다. 그렇게 쉽게 쉽게 풀고 잊어버렸던 시험. 그 결과 난 전국에서 뽑혀서 남산쪽에 매주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었었다. 인천 한 구석이였던 우리집에서 남산까지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지하철 타고 버스를 또 타고 가야했는데 어른들의 화장품 냄세, 옷 냄세가 늘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특히 지하철에서 어른의 엉덩이 가까이에 내 얼굴이 있다보니 방구를 끼는 어른이 너무너무 싫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고통을 겪고 가면 거기에서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었고, 학교 미술 시간에 하지 않던 방식들도 많았다. 글도 썼고 만들기도 했고 가벼운 과학 실험도 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경험들은 너무 즐거워서 2시간이 걸리는 교통지옥 시간이 괴롭지 않았다. 거기 수업에서 그렸던 그림 중 하나는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엄마에게 꽤 초조함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더욱이 나보다 더 모든걸 잘하는 언니까지.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아빠와 함께 서울을 다녀오시기 시작했다. 집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한참 엄마랑 아빠랑 서울을 몇번 다녀오시더니 집을 계약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난 계약이 뭔지 모르지만 엄마가 웃어서 좋은 일인가보다 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엄마 아빠가 집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어려운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엄마는 아빠를 원망했고, 아빠는 그럴 수 있지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아빠가 왜 고집을 피우는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말 할 순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자주 다투는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고 결국 뭔가 조용해지더니 어느 날 우리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나중에 뉴스에 ‘8학군’이라 명명되는 그 치열한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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