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이 지우가 되는 이야기 4
이 글은 가정 폭력과 성적 학대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들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이럴 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엄마의 코피로 만들어진 붉은색 얼룩으로 나의 세상이 뒤집혔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우리 집은 평화를 되찾은 줄 알았다.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상처들의 끈적한 진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그저 더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묘하게 긴장감이 도는 날들이 쌓이던 중 주말이 되었다.
그날따라 꽤 일찍 누워서 자고 있었다. 한 주 내내 기다렸던 이벤트인 주말 영화 시간이었지만, 아마 그만큼 피곤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선풍기를 틀고 이불을 차고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밤의 서늘함이 배에서 느껴지며 춥다는 생각과 함께 잠이 살짝 깼다. 그런데 이상하게 누군가의 뜨끈한 손이 내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영화 소리, 그리고 그것을 보며 대화하는 엄마와 언니의 목소리로 봤을 때 그 손의 주인은 아빠였다.
이유는 몰랐지만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머리맡에 앉아있는 아빠를 쳐다봤다. 그러나 아빠는 한 손을 더 넣어 내 양쪽 가슴의 끝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쉿… 아빠야."
한참을 그렇게 주물럭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던 아빠는 손을 빼더니 내 뺨을 쓰다듬고 나갔다.
"뭐 했어요?"
"들어오는데 보니 이불 차고 자고 있길래 이불 덮어주고 왔어."
"아유... 또?"
엄마는 얼른 일어나서 우리 방으로 왔다. 나는 그 소리에 목 부분이 풀어진 티셔츠가 안 보이게 옆으로 누워서 자는 척했다. 엄마는 살짝 열려 있던 방문을 열고 확인하더니 선풍기를 끄고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나가셨다. 금세 이불 안은 후덥지근해졌다. 그러나 나는 선풍기를 켤 수도, 이불을 차낼 수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움직여버리면 뭔가 들켜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머리에 땀이 흐르는데도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뒤틀어진 것 같지만 숨겨진 그 기묘한 밤이 지나고 며칠 뒤였다. 엄마 아빠가 또 사소한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소소한 말다툼은 나도 그냥 무시하지만, 점점 커지는 목소리는 나를 또 불안하게 만들었다. 싸움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눈덩이가 너무 커져서 우리 집을 덮쳐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눈덩이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아빠! 그만 좀 해! 엄마도 그만 좀 긁어!"
그 순간 뭔가 쨍하고 깨지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평소라면 절대 멈추지 않았을 아빠가 순간 멈칫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침묵의 순간은 운명 교향곡처럼 웅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을 무시하기로 선택했다.
얼마 뒤 또 엄마 아빠가 싸웠다. 전날 내 행동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언니가 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리자 오히려 아빠는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고양이가 위협당하는 것처럼. 고양이가 더 몸집을 부풀리고 방방 뛰는 것처럼 아빠는 더 분노를 발산하려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나의 "아빠!" 이 말에 또 멈췄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흉포하고 언제 입질을 할지 모르는 개의 목줄을 쥐고 있음을 깨달아버렸다. 그 목줄은 나에게 꽤 큰 성취감과 뿌듯함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쓸모없는 내가 쓸모 있어졌다는 기쁨, 이제 좀 안전해질 수 있겠다는 안도감, 그리고 약간은 무서운 것을 정복한 것 같은 고양감 같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나의 터널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