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혼자서 신과 계약서를 쓰다.

지연이 지우가 되는 이야기 - 프롤로그

by 꿈꾸는 지우

누군가에게 중2는 반짝이는 시절일 것이다. 친구와의 기억, 학원을 다녀오며 먹었던 떡볶이의 맛, 엄마 몰래 갔던 만화방의 즐거움.. 누군가에게는 그런 반짝이는 기억들의 총 집합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중2는 조금 달랐다.

물론, 저런 반짝이는 기억들도 분명 있다.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눈물, 반창고, 새벽의 울음, 그리고 커터칼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혼란이 가득했다. 사춘기여서? 물론 그것도 한 몫은 했겠지? 그러나 난 진지하게 신에게 따져 묻고 싶은것이 있었다. 도대체 신의 생각이 뭔지 너무 궁금했었다. 신이 존재하긴 하는건지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카톨릭인 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신이라는 존재를 알고 싶어서.

그때는 아마 밤이였을 것이다. 새벽 2시쯤이였나? 마지막 요한 묵시록까지 다 읽고 난 뒤, 난 펑펑 울고 있었다. 입에서는 주의 기도문을 소리없이 외우며 침묵의 오열을 하고 있었다. 성경을 다 읽었음에도, 도저히 내가 묻고싶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과 내가 왜? 라는 억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께 엎드려 빌며 제발 긍휼히 여기셔서 제게 답을 내려달라는 간청이 뒤섞여있었다. 가장 완벽하다는 주의 기도문을 외우며 나의 무력함에, 그리고 신앞에 그저 무릎 꿇고 빌 수 밖에 없음을 절절히 느끼던 밤이였다. 그날은 내가 세번째이자 마지막 자살 시도를 실패한 날이였다.


수도꼭지가 고장난듯 운다는 말이 무엇인지 느낄 수 밖에 없도록 흘러내리는 눈물속에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내야 하는지 묻지 못하는 이유를 찾다가 든 생각은 신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다 보고 계실테니, 그분이 원하는게 있으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그분이 날 어디엔가 쓰실 이유가 있어서라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면 나도 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엔 나도 깨끗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희안하게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희망으로 느껴졌다. 따스한 햇살이 나에게 비추이는 것 같았다. 손목에 느껴지는 피가 배여나온 반창고는 더 이상 용기 부족과 미련이 덕지덕지 붙어서 실패한 증거가 아니였다. 그분이 친히 쓰셔야 할 곳에 내가 아직 안쓰여서 일어난 당연한 결과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 신이 날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을거야. 그런데 내가 함부로 생명을 끊으려 하니 안되었던 거구나. 그렇다면 신이 날 태어나게 한 그 일을 완수하자. 아니, 아니지. 그걸로는 부족하겠다. 더 잘해야지. 그분이 보시기에 니가 이렇게 까지했다고? 장하구나. 라고 하실만큼 그분이 나에게 내려준 소명도 잘 해내고 더 잘 살아야겠다. 내 부모에게 잘하고,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다 가면... 그러면 하느님이 내 소원 하나쯤은 ..딱 하나의 소원쯤은 예쁘다고, 고생했다고 들어주실지도 몰라.'

그 생각이 들자마자 너무 기뻤다. 그 전에는 내가 원하는것을 이룰 방법을 몰랐는데, 이젠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살자. 신이 날 자연스럽게 죽게 만들 때 까지 잘 살자. 내가 해야할 의무도 다 하고, 남에게 피해도 최소한으로 끼치면서, 착하게 잘 살면, 하느님이 나 쫌 이뻐해주실지도 몰라. 그러면 그때 조심스럽게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고 청하자. 내세가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뭔지 다 잘 모르겠지만, 그저 내 존재가 쌓아온 모든 인연, 업, 죄값을 다 치를테니, 나...제발 소멸시켜달라고.. 태초부터 나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처럼 삭제헤 달라고... 그거 하나만 빌자.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착하게, 할거 잘 하면서, 살자'


그렇게 난 중2 여름밤에 신과 계약을 맺었다. 비록, 그 계약서에 사인을 한 존재는 나뿐이라는 사실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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