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인생 모멘텀 세 가지

아직도 내 인생이 제자리인 것만 같아도 힘낼 수 있는 이유.

by TV피플


우리의 인생에서 하는 일은 식사 한 끼를 하는 메뉴처럼 다양하고, 발로 자국을 남기는 여행의 자취처럼 꽤나 다양한 것만 같지만, 크게 한 가지 테마 안에서 움직인다.




‘얼마나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나답다는 애매모호한 정의에서 인생의 발걸음을 움직이다 보면, 크게 두 가지로 자신의 행동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내가 갖고 있고 드러나게 되는 나 자신을 100이라고 생각할 때, 그 중 30 정도를 제외한 70을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행동이 그 첫 번째..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비롯해서 내 스스로 갖고 있는 무언가 정체되어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아를 내려 놓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모든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틈만 나면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을 비롯해서, 과거에 무언가에 의해서 형성된 트라우마나, 걸핏하면 남 앞에서 부끄러울 수 밖에 없는 모든 종류의 나약함...

각자 자신에 맞게 그 무언가가 오래된 잿빛과 같이 남아 마음 속을 어지럽히고, 남 앞에서 움추려 들게 하며 필연적으로 자신의 인생은 한 곳에 머무르는 우물처럼 고여 있을 것 같은 묘한 자기발견.. 그리고 그 정체된 마음이 주는 인생의 고정적인 무변화의 기질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는 것만 같다. 남 앞에서 이미 드러난 것도 있지만 자신만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감추고 싶은 나만의 모습..



나는 이걸 쉽게 말해,
‘분리적 자아행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또 하나의 나의 행동은 무엇인가. 바로 70의 그 ‘분리적 자아’를 덜어내고, 지금의 100의 나에게 30만을 남긴 뒤, 90만큼의 이상적인 자신을 지점토 붙이듯 나를 만들어 가서 120의 꿈꾸는 자신을 만들고 싶은 부푼 마음의 꿈꾸는 나.. 100이었던 자신을 120으로 만든다는 희망과 판타지를 심어주는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나.. 주말이 되어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로운 주말 한 때를 즐기는 자신을 경험하고자 핫플레이스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다 그러한 90의 새로운 자신을 내 안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행동들이다.


이는 자신을 덜어내는 ‘분리적 자아행동’과 구분해서,



‘개방적 자아행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어쨌든 우리가 새로운 자격증을 따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하거나,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취미를 갖고,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누군가의 초대로 맛본 특별한 레스토랑의 식사를 찍어 SNS에 올리는 일까지.. 그러한 행동이 더해지고 깊이를 가질수록, 오래 지속될수록 자신은 90의 새로운 자아를 덧붙여 120의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벅찬 기분에 젖어 든다. 우리의 ‘인생적 노력’은 대부분 이러한 ‘개방적 자아행동’에서 동기부여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과거의 행동을 반복하며, 현실의 벽 앞에서 움추려 든다. 어제까지 꿈꿔왔던 새로운 인맥과 나만이 발견한 특별한 삶의 진리를 기존의 나약한 자신과 바꾸고 싶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면접하며, 새로운 장소에 서성거려 봐도 결국 우린 왠지 그 자리에 서 있다. 지난 몇 달을, 혹은 몇 년을 준비한 ‘내가 꿈꾸는 나’.. 그렇게 찬란한 인생을 꿈꾸던 새롭고 혁신적이기까지 했던 리뉴얼된 멋진 나의 모습.. 하지만 왜 현실은 그대로인걸까..

우린 그런 숱한 좌절과 정체된 자신을 ‘분리적 자아행동’과 ‘개방적 자아행동’이 치환할 수 있을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아지다가도,, 다시금 만만치 않은 현실과 부족한 자신 앞에 한 숨을 쉰다. 어쩌면 이건 원론적인 이야기다. 왜냐하면, 우린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모든 인생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 안에 존재하는 30만큼의 ‘원형적 자아’가
내 인생과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게 때론 어설프고, 실수투성이고 운이 따라주지 않는 또 다른 나의 변형적 자아라고 해도,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숨쉬고 있는 한 늘 내 스스로 움켜쥐고 가야 할 변하지 않는 자의식과도 같다.

어쩌면 그 30의 자아가 인생을 더욱 멋지게 살게 할 키워드를 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린 그 30의 자아에 대해 절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생의 우연과 기회가 만들어지며, 새로운 나 또한 그 변하지 않는 자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먼 길을 걸어 나는 다시 그 곳에 서 있었다. 때론 너무 인생이 정체되어 있는 듯 해도, 그 30의 자아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고, 따뜻한 미소로 인생의 긍정과 여유를 찾아가는 것을 절대 멈추지 말라며 함께 하고 있다. 부족한 듯 보여도 절대 그런 것이 아니고, 나다운 것의 가치를 꼭 쥐고 앞으로 걸어가라며 환하게 웃어 주고 있다.



‘나는 그 30의 자아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걸어가고 싶다.’


아무리 어설프고 비틀거리는 원형적 자아여도 말이다.





(이미지 출처: crean.es/ The Atlantic/ coffeepearlsandpoetry.tumblr.com/ www.bannaitaku.jp/ Flickr/ My Modern Net/ masakokubo.co.uk/ thesetingstaketime.com/ inu1941-1966.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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