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이 꾸는 꿈. (3/3)

村上春樹の夢、 3/3

by TV피플

<보이지 않는 벽, 그리고 새로운 세계>

이미 언급한 주인공의 ‘작은 삶, 큰 의미’의 발견은 스토리는 달라도 커다란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다양한 신화적인 소스(‘해변의 카프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그러하고, ‘태엽감는 새’에서 우물에 들어간 주인공이나, ‘1Q84’에서 고속도로 갓길 비상계단을 통해 다른 세계로 경험하는 인물은 새로운 세계와의 연결을 통해, 대치 중인 캐릭터를 죽이거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인물을 만나게 된다. ‘댄스댄스댄스’에서 오래된 이루카 호텔이 돌핀호텔로 바뀌었지만 특정 층에서 ‘양’을 만나면서 과거의 말라버린 꿈과 만나고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경험하는 주인공도 다분히 메타포적이다.



물리적인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신선했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현실세계를 마감하고 영원한 무의식의 세계를 선택하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기억에 끝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강렬한 지적욕구와 잠재의식에 대한 구체화 욕구를 끌어낸다.




<수상소감>

그의 다양한 수상에서의 소감은 짧은 문장이지만, 강렬한 각인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명언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그의 코멘트를 살펴보자.

- 수상은 매우 기쁘지만, 형태가 있는 것에만 연연하고 싶지 않고 또한 벌써 그럴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군조신인문학상’)
- 상은 작품이 받는 것이니 나 개인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처지는 못 된다. 다만 이제까지 여러 모로 신세진 분들에게 상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고마운 일이다. (‘노마문예신인상’)




- 솔직히 나는 소설을 쓴지 삼십년 가까이 흘렀고, 줄곧 일관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좋은 대로 해왔을 뿐이어서 어딘가에 공헌했다거나 하는 문제는 거의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가장 소중한 상 혹은 훈장은 독자라는 존재의 부단한 열정이지 그 밖의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히 상’)
-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든 이 세계에는 책이라는 형태로 밖에 전할 수 없는 생각과 정보가 변함없이 존재합니다. 활자로 된 이야기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의 움직임과 떨림이 변함없이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을 믿고 삼십 년간 꾸준히 소설을 써왔습니다. (‘신부상’)
-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예루살렘상’)





<앞으로의 하루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이 한국에 출간되었고, 다양한 형태로 번역이 이루어 졌다.

다만, ‘문학사상사’, ‘문학동네’, ‘비채’ 등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책을 출간하고, 또 다른 형식으로 단편소설을 재편집하여 서점에 내어 놓기 때문에 새로운 책이구나 하고 샀다가 이전에 봤던 내용이 꽤 있는 것은 조금 불만스럽다. -_-

7일만에 100만부를 돌파한(이건 ‘1Q84’보다도 빠른 판매량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츠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또한 한국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유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문학적 탐독과 천재적인 필력에 근거하겠지만,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양한 국가에서의 삶과 외국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꾸준하는 작업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작은 삶, 큰 의미’로 관통되는 인간의 ‘존재이유(레종 데트르)’를 끊임 없이 고민한 작가의 노력이 다양한 책에서 이어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 또한, 지속적으로 그의 책을 찾으며 힐링을 경험하려는 독자들의 숨겨진 진심이라고 할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지만, 그의 작품 흐름을 볼 때 조금 아쉬운 점은 ‘해변의 카프카(2002)’ 이후 전반적인 강렬함이 조금 주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2004년 발표한 ‘어둠의 저편’은 문맥의 흐름에 다소 난해하고 전방위적인 구석이 있으며, 2006년 ‘도쿄기담집’ 또한 작가로서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책 같기도 한다.



2009년 ‘1Q84’로 다시 한 번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만, 3권에 걸쳐 총 2,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비해 주제의식은 이전부터 강조한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연결, 그리고 인간 본연의 소중한 의식과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전반적인 책을 통해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의식은 통일성과 고정적인 독자를 확보하지만, 한 편으로 확실한 변화를 주지 않으면 세계적인 작품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애정을 가진 독자로서 가진 단상에 불과하며,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지켜보는 심정은 참 소중한 것 같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하루키. 그리고 외동아들로 자라온 덕에 혼자 무언가 긴 호흡을 가지고 착실히 깊이 있는 소설을 쓰는데는 꽤 정통하다는 하루키. 다양한 세계문학을 오랫동안 섭렵하며, 일본적인 풍경을 가진 소설이지만 동시에 세계문학으로서 손색없는 집필작업을 계속 하는 하루키.


그의 앞으로 남은 행보가 지속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