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Happiness,,

by TV피플

행복,, 어찌보면 가장 어려운 주제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고자 한다.


쉬운 담론부터 시작해 보자.


행복의 필요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생각한다면, 돈, 만족도가 높은 직장, 가족과의 유대, 인간관계의 돈독함, 나만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취미, 사회적 지위, 명예, 주변사람에게 받는 인정 등으로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그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우자. 그것이 행복의 첫 걸음이다.


상기에 언급한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조건을 채워나가기 식의 행복에 집착하다 보면 특정 부분에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을 경우 전체 시스템의 붕괴와도 같은 공식을 이끌어 내어, 아이덴티티의 붕괴를 경험하게 되기 쉽다.


매스미디어를 접하다 보면,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발군의 기량으로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이 있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힘든데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한 사람들이 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부럽고 부러우며 나는 언제쯤 그러한 기량을 발휘할까 한숨만 나온다. 나만 한숨을 쉬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같은 화면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한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 각자 가슴속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신은 천재가 아니란 사실을,, 그렇다면 과감하게 가능성을 비우고 괜히 신세한탄하는 일은 그만두도록 하자.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끔 잘 팔리는 자기계발서를 탐독하자면, 어릴 때부터, 혹은 특정한 생의 기회를 계기 삼아 자신만의 경력을 쌓고 흔히 말하는 스타덤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인생역전과도 같고 때로는 모험처럼 즐겁게 산 결과가 큰 행운을 안겨준 것만 같은 신기한 사람들. 또한 부러워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것 역시 그만 두도록 하자. 그렇지만 꼭 붙잡고 살고 싶은 게 있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해 온 결과, 지금에 와서 성취한 각종 학벌과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 부와 자산. 이것 역시 버리도록 하자. 진짜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염두에 두고 집착하지 말자는 의미다. 스스로를 시스템화 시켜서 퍼즐을 맞추지 말자는 얘기다.


물론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 혹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에서 중요한 구성요소이고, 좀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만족을 찾게 해 주는 긍정적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어떠한 형태로든 내 손에서 사라질 수 있는, 혹은 큰 의미를 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자신이 기대기에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의 가변성이 너무나도 크다.


누군가는 얘기할 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은 다른사람들이 이뤄놓은 것과는 다른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나 자체를 대변할 만큼의 진정성을 갖고 있다." 자, 그렇다면 방향을 바꾸어 질문해 보려고 한다. 자신을 대변할 만큼의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 5가지만 머릿속에 떠올려 보고,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차분히 머릿속에 떠올려 보거나 기록해 보자.


다시 한 번 떠올린 것이나 기록한 것을 곱씹어 보자. 자신은 떠올려 가면서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생각하며 이루어놓은 성과를 조금은 그럴 듯하게 포장하거나 의미부여를 하고, 심지어는 과대포장하거나 격상시키지는 않았는가?

조금이라도 그러한 것들이 발견된다면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하자.우린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심하게 의식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필요이상으로 남의 눈을 인식하고 힘겨워 한다. 아둥바둥 사는 모습. 언제까지 자신을 부풀려야 이 풍선불기 게임이 끝나게 될까?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기대지 말자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요소들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스스로 살아가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성취하려는 목표가 현실적으로 바뀔 수록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공허함은 커져가고, 남과 비교를 하게 된다.
굵직한 카테고리로 한 번 생각해 보자.


돈과 명예, 사회적 지위 등 흔히들 꿈꾸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보자. 본인은 물론 기쁠 것이고 주변에서도 축하해 줄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자, 모든 방해요소와 잡음을 지우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해 보자. 그 행복감의 핵심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다. 남이 부러워해 주는 시선을 통해 자신의 위치가 높아졌음을 느끼고 상대적인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물론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단, 남의 시선을 통한 행복이란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진정한 만족은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 물질적인 요소를 배제한 인간관계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난 대학교 때 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친구를 여럿 보고 꽤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중의 한 명의 친구가 혼자 있을 때 아주 외로워했던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꽤나 충격이었다. 그 친구의 심경이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람들이 부대끼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다양하게 넓혀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준다. 그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 스스로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자.


인간관계를 넓히고, 주변 사람을 만날 때 순수한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가. 그 내면을 한 번더 들여다 보자. 천천히.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진 않았는가. 스스로 홀로서기가 두려운 자신을 조심스레 마주하게 된다. 남이 나에게 영향을 받고 기뻐해 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경험하며, 나는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독립되지 못하면 늘 상처를 주고 받기 쉽다.


샐러리맨이란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회사에 다니는 이상 우리는 샐러리맨이다. 그리고, 다양한 직종과 분야에 있고, 업무환경이나 복지, 월급 등 다양한 방법으로 비교를 해가며 순위를 매긴다. 마음에 안 들어하며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명이지만 그래도 다들 회사를 다니면서 그 안에서 만족을 찾는다. 여기서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도 그 수백만명 중의 하나다. 애써 부정하며 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그러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지금 같은 생각을 하는 당신을 굳이 들여다 보지 않는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쁜 인생이다. 그 안에서 비교를 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평생 무언가 쫓아갈 뿐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쫓아보려던 10대도 지나갔고, 무언가를 바꾸어 볼 것만도 같은 20대도 흘러갔다. (혹은 흘러가고 있다.)


축적하며 탑을 쌓아가는 인생을 버리고,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에 몰입해 보자. 자기 확신이 생겨난다. 꿈과 가슴떨리는 행복. 느끼지 않아도 좋다. '살아가는 자기확신'이면 충분하다.


제목에서 쓴 것처럼 '행복'이라는 주제를 넘어서야겠다고 생각한 건, 행복이란 단어가 주는 편협함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라고 하면 무언가 설레고, 즐겁고, 가슴 벅차기만 하고, 전혀 따분하지 않은 감정에 집중하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이 찾아오지 않거나, 꿈과 희망이 결여되어 있는 순간엔 불행하다고 느끼기 쉽다.


그것보다는 내가 지금 안고 있는 고민, 여러 불합리한 것만 같은 환경. 그 환경에 자신을 차분히 몰입시켜 보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집중해 보자.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론 괴로운 일이 된다. 하지만, 결국 거기에서부터 내 인생은 시작된다.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다. 탈출하면 다시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누군가를 부러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결국 거기에서부터 내 인생은 시작된다. 주변의 시선과 평가가 자꾸 신경쓰이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주변 사람은 자기 스스로 살기에도 바쁜 사람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절대 당신을 의식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풍경과도 같다.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으면 차창밖으로 보이는 여러 풍경들을 주변의 환경에 대입해도 좋다. 그리고 여러분이 신경쓴 그 풍경은 곧 지나간다. 어느새.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던 때를 생각해 보자. 정신을 차리고 몸을 겨우 추스리는 시점에서 오늘의 업무와 내가 가진 환경과 주변 사람이 생각났는가? 덩그러니 놓은 내 몸뚱이 하나 부여잡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혹시 왠지 모를 '살아가는 자기확신'이 느껴지진 않았는가.


간단한 예가 하나 더 있다. 일요일 오후만 되면 회사가는 게 스트레스였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월요일에 출근해서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일에 몰입했을 때, 어느 샌가 점심시간이 되고 하루가 저물어 가던 순간이 꽤나 많지 않았는가? 그리고 왠지 모를 만족감이나 자신감이 솟지는 않았는가? 그 때 누군가 떠오르던가 주변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냥 나 스스로 갖게 되는 왠지 모를 확신감이다. 순수한 감정이다.


무언가 시도할 때 자신감이 없으면 무언가 시작하기 힘들었던 때도 있을 것이다. 왜 자신이 없는 것일까?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없고, 결과에 집착하며 무언가 했을 때 찾아오는 만족감은 예상보다 낮고 좋은 결과에 미치지 못하며, 다시 낮아진 자신감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 하지만, 그 고리를 풀지 못할 원인이란건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내 스스로 뫼비우스의 띠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을 뿐이다.


1만미터 상공에서 한국을 내려다 본다고 생각해 보자. 아둥바둥 주변을 신경쓰며 자기확신이 결여된 삶을 사는 내가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올 것인가. 오늘 신경쓰이던 일이 1년 뒤에는 어떨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주인공의 고민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같은 공식을 대입해 보자면 100년 뒤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조금 더 대범해 져도 좋을 일이다.
지금 당장 주어진 일부터 시작해 보자. 꽤나 마음대로. 그 일이 재미없어도 좋고, 나쁜 결과가 뻔해도 좋다.





'살아가는 자기확신'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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