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심리의 최고 단계.

'지금'에 대한 '몰입'

by TV피플


심리학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건, 아마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그 시간을 같이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적절한 기록과 대표적인 이론이 존재하지 않고, 마음을 들여다 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몰랐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칼 구스타브 융, 지크문트 프로이트, 아브라함 매슬로우, 알프레도 아들러 등 여러 심리학자의 책들을 대학 시절부터 간간이 접해 왔지만, 무언가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은 있을지언정, 완벽한 이론이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완벽한 인간의 마음이란 것 자체가 불완전한 특성이 가득한 인간에게 있어 패러독스이니, 그걸 설명하는 이론이 완벽하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거다. 서로의 이론에 반박하며 학파를 달리했던 수많은 심리학자의 노력이 있어 우리는 마음을 스스로 조금이나마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사이 좋게 경우에 따라서 누구의 이론이 더 적절한 지 의미 있는 정반합의 토론을 계속 했어도 좋았을 지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지금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보상욕구가 지금의 또 다른 자신을 규정하며, 꿈이 무의식을 드러내고, 인간의 욕망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행동을 설명하는 등 다양한 시도와 해설은 꽤나 흥미롭다. 조금 더 나아가보면 인간은 자신의 지금 모습에 대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과거의 행동이나 꿈, 그리고 또 다른 이상향, 욕망을 통해 스스로를 좀 더 알고 싶어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해 조금 더 불확실성을 줄여가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확장되어 철학이 있고 종교가 있는 것이겠지만.




어찌 됐건 인간의 마음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려는 노력은 언제나 인생의 정면과 핵심에 맞닿아 있지 않았나 한다. 그 개인심리가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고, 문제 해결과 인생의 흐름을 외적인 무언가의 성취가 아닌 내적인 재발견에서 찾는 것이 꽤나 인간적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라 불리우는 지도 모르겠다만,,

그럼 그 개인심리의 최고 단계는 무엇일까. 위대한 성인 군자가 될 수 없는 우리들이기에, 인간의 이상향을 짚어 보려는 게 아니라, 그냥 각자는 어떤 마음의 형태를 소중히 붙잡고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담론인 것이다.




아주 쉽게 생각해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그것에 기대며 현실을 이겨내는 건, 추억 가득한 사진을 한없이 바라 보는 것일 뿐이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이들링(idling)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는 열 시간 남짓한 인생을 매일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열 시간을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많이 흘려 보낼수록 남은 대여섯 시간은 무언가 가슴 뛸 지 모르지만, 플랜 B 가득한 심리이므로 정말 자기다움은 찾기 어렵다.

미래를 꿈꾸며 힘든 지금을 이겨 내는 것도 현재의 자신이 향후의 이상향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방금 언급한 하루의 열 시간 남짓한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심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과하게 해석하다 보면, 지금 별로 재미도 없고 힘든 시절인데, 그것을 미래만 바라보며 이겨낸다는 것은 그 열 시간을 집중하긴 하지만, 정면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는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최근 수년간 개인 심리의 화두가 되는 황농문 교수의 저서 ‘몰입’의 내용과도 그 맥락을 한다. 몰입이 무의식에 필적할 만큼의 집중도를 갖지 못하니, 무언가 재미없는 현재를 버티게 해주는 미래만을 꿈꿔서는 그냥 현실을 ‘버티게’만 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냥 평범한 현재의 흐름을 더욱 더 평범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지금 내 인생의 화두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현재,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수 차례 다른 에세이를 통해 언급했듯이, 우리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각자 인생이 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괴로운 일, 힘든 일, 슬픈 일, 기쁜 일, 한없이 행복한 일은 시기를 다르게 해서 나타날 뿐이지, 결국 내 인생에서 한 번은 일어날 일이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이 그러하니, 하루 내내 슬프다고 해서 인생이 전부 슬프다는 어린 얘의 마음 가짐에 머무르지 말자는 말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었고, 인생의 절반은 기쁘지 않고 지루한 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오히려 비율은 기쁜 일보다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래를 떠올리며 이겨내는 건 결국 인생의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비스듬히 인생을 바라보며 그게 내 인생의 정면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착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피상적으로 행복해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직장을 다니기 싫어 평일 내내 불평 불만이 가득하면서, 주말만 기다리는 사람은 인생의 7분의 2만 스스로 가지겠다고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머지 7분의 5인 평일은 버리는 카드 임을 인생의 룰렛에서 인정하는 꼴이다. 무언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 인생인 지도 모른다. 물론 쉽진 않지만, 말이다.

그 쉽지 않은 인생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개인 심리의 최고단계는 결국, 현재가 어렵든 희망이 보이지 않든, 즐겁든 행복하든지 간에 그냥 바로 ‘지금’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집중하는 것이다. ‘몰입’해 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과거에 집착한들 그건 꿈을 꾸며 과거의 조각을 만지작거리는 것이고, 미래를 희망 가득하게 설정해서 앞으로 나갈 힘을 얻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미래의 시점이 다가온 순간, 우리는 이러한 변형된 학습을 통해, 그 미래가 아닌 더 먼 미래를 꿈꾸며 ‘그 시점의 현재’를 즐기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학습의 존재다. 경험의 순간에 그 순간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적당히 넘기거나 피하게 되면, 또 다른 비슷한 감정의(예를 들면 슬프고 힘든) 순간에 또 어디론가 심리적으로 달아나게 된다.


장수의 시대가 왔다, 100세의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바로 인생의 ‘지금’을 즐기고 정면으로 ‘몰입’하는 방법은 누구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루 중 3할 이상을 피하는 것에 집중하거나 과거나 미래의 힘을 빌려 넘기려고 하면, 그 비율만큼 자신의 인생은 단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그러한 것엔 집중하지 않는가.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내 스스로 '지금'을 즐길 줄 아는
'몰입도'를 최고로 높여가는 것.



그것이 바로 개인 심리의 최고 단계다.











(이미지 출처: 상기 사진 두번째부터 하기 사이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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