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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V피플 Jul 16. 2016

타인의 마음이 아닌, 내 마음 위를 걸어가기.

두 마음의 밀당에서 벗어나는 방법


 
우린 늘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신의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이 다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특히, 본인이 10대에서 30대 사이의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봐야 한다. 정해진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은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꽤 굳어지고, 좋게 말하면 확고해 져서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이미 정한 개인의 생각, 가치관, 사회적 통념 중 수용 가능한 부분을 적당히 변형해서 자신의 것처럼 인지한다.



 
뭐, 어찌됐든 좋다.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 간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우린 스스로 떠올리는 생각을 너무 자신의 것이라 받아 들인다. 기본적인 상식은 적정한 해답이 현실에 주어져 있다고 치자. 조금만 더 생각의 범위를 넓히면, 한 주제에 대한 생각, 오늘 무엇을 할 지 결정하는 짧은 순간에도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면 공상이나 망상을 거듭하다, 무기력해 지기도 하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 지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 속에 기분 좋은 상상과 답답한 심정을 반복한다.



과연 어디까지가 내 생각일까?




 
의외로 해답은 단순하게 구분 되어 있다. 우리 마음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물론 무수히 많은 마음의 방이 있고, 생각의 고리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린 최종적으로 남은 두 가지 생각에서 하나를 고르며, 기지개를 켠다. 일어날 순간을 정하고, 양치질을 하며, 양복이나 츄리닝을 입고 출근을 하거나 동네 편의점에 간다.





대학을 정한다. 연애할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일 지 결정한다. 고백을 하고 사랑에 빠진다. 직업을 정하고, 하고 싶은 일의 취미와 특기 수준을 적당히 구분해 몰입한다.





 
그렇다면 그 두 마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왜 그렇게 내 마음은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반복하며,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밀당을 반복하는가? 두 마음의 밀당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 두 마음의 성격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두 마음 중 자신은 어떤 것이 가장 나다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그 마음의 성격 안에서 모든 결정을 하면 된다. 일상을 하루하루 추진해 나가고, 하고 싶은 일을 정하면 된다.





 
바로 첫 번째 마음은, 외적인 보호막과도 같은 마음의 껍질에 주목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주변의 시선을 인식하고, 돈을 많이 벌며, 남이 보기에 그럴 듯한 차를 구입한다. 최대한 큰 집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시세차익을 남기며 집의 매매를 고민한다. 시험 성적이 1점이라도 더 나오게 하기 위해서 모든 뇌를 한 곳으로 집중한다. 댓글과 팔로우 숫자를 주목한다.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며,최대한 많은 사람이 방문한 브런치 집을 드나든다.



두 번째 마음은, 누가 뭐라고 하든 그냥 나 혼자 멍하니 떠올려 본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쁜가. 어떠한 생각이 가장 나다운 생각인가. 나다운 행동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절대 어떤 순간에든 피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그래서 그 정면을 바라본 순간에 순수하게 느껴진 그 무엇의 마음을 조용히 따라가고, 긴장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둘 다 나의 마음이다. 더 할 나위 없이 나의 마음이다. 나의 일부분이고, 둘 중, 어떤 마음을 따라가든 다른 한 쪽의 마음도 평생 나를 따라 다닐 것이다. 두 마음의 밀당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두 마음 중 어떤 마음을
나의 아이덴티티로 설정한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생은 변화한다.



 
난 늘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돈을 많이 벌고, 남이 볼 때 그럴 듯한 외형적 삶을 지향하는 것은 절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에 충실하며, 최대한 많은 보수를 받고, 좋은 차를 사고 남의 시선에 의존한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나쁜가.



 
두 번째 마음에 집중한 삶도 결국 첫 번째 마음 때문에 늘 고민을 한다.
 
단지, 어떤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하여 살 것인지 제대로 정하고 사는 것이 훨씬 하루하루 몰입과 집중도가 높다는 점이다. 더 나다워지는 삶의 체험을 계속 하며 가슴 뛰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나만의 아이덴티티와 오리지낼리티 지수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마음의 밀당 때문에 늘 정신적으로 고민하고, 그래도 나답게 살고 싶다며 발버둥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다. 정말 돈을 벌고 유명해 지고 싶다면, 그것에만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두 번째 마음의 나다움이 언젠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늘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담백한 자신의 결정에 가슴 뛰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유명해 지고, 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부를 획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적당히 양 갈래의 마음에서 왔다 갔다 하면, 그냥 적당히 평범한 삶을 산다는 점이다. 어떨 때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어떨 때는 정말 나다운 것에 한 표를 던진다면, 그냥 적당히 돈 벌고, 하루하루 회사생활에 염증과 우쭐함을 반복하며, 가족 안에서도 적당한 사람이 되고,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가 된다. 그냥 적당한 인생을 산다. 그것이 나쁜 건 아니다. 우린 대부분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고민하는 우리들이라면 좀 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해보자. 그리고 그 전에 마음의 노선을 확실히 하자. 남과 비교되는 삶을 살기 싫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삶을 지향하는 지를 확실히 하자. 그리고 둘 중 어떤 마음의 카테고리로 평생을 살든,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
 
마음의 노선을 확실히 하고,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결국 우린 결과에 덜 흔들리게 된다. 마음을 결정한 순간에 난 이미 나다운 것이다.



첫번째 마음은 표면적으론 내 마음이지만,
그 마음의 원형은 결국 타인의 마음에서
채용한 것이다. 누군가 기뻐해 주는 것을
당신의 마음의 원형으로 붙잡고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걸까?
어느 정도의 동기부여는
될 지 몰라도,
평생를 아우르는 메타포가 될 순 없다.



그래도 좀 더 나에게 가까운 두 번째 마음.
한 번 뿐인 인생, 그렇게 평생을 한 번 살아보자.

멋지게, 산뜻하게.




내 마음 위를 한 번 걸어가 보는 것이다.
인생의 시계가 멈춘다 해도.


 


(이미지 출처: 이노우에 다케히코 '리얼' / '슬램덩크'

                     / 비와이 앨범표지 'time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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